#프라도미술관이야기 두번째 책 집필하기
#프라도미술관 #프라도미술관이야기 두번째 책 집필하기
3. 화가 프란시스코 데 고야
The Painter Francisco de Goya. 1826. Oil on canvas.
Room 062A
LÓPEZ PORTAÑA, VICENTE 1772-1850
고야 자신이 그린 자화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풍겨준다.
영화 ‘고야의 유령’에서 보던 자화상의 이미지와 달리, 자기 노후의 삶을 살고 있던 프랑스 보르도에서 1826년 잠시 귀국했을 때의 모습을 포르타냐가 그린 것이다.
프랑스의 계몽주의를 기대했던 고야에게 프랑스는 크나큰 아픔을 선물했다.
그 잔인함을 그는 내적으로 갈등을 겪었고, 들리지 않는 귀로 자기 삶에 숙명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고야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뛴다.
우리가 늘 보고 가는 1층의 옷을 벗은 마하나 0층의 퀸타 델 소르도(귀머거리의 집)과 1808년의 그림이 다가 아니다.
2층에 마련된 고야의 방에 가보면, 그 앞에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게 된다. 젊은 청년들 마하, 마호의 환한 웃음과 만사나레스 강가에서 즐기는 여유와 낭만 그리고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그림 속 주인공들은 늘 환하게 웃고 있다.
그리고 고야의 붓 터치 역시 너무나 화사하고 그 어느 곳에도 어둠의 광인이라 불리던 그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왜 이리 변한 것일까?
왕실 화가가 되어가면서 이상하리만큼 그의 색채감은 점차로 어두워지고 급기야 블랙 페인팅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울분과 분노 그리고 억울함과 비참함 등의 다양한 주제 속에 항상 속고 속이는 관계성을 비판하는 모습의 그림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던 그에게 떠나있던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노후에 대한 연금 문제로 급히 마드리드로 귀국했을 때, 포르타냐의 붓 터치에 자기 모습을 담도록 허락했다.
왕실 박물관이 주문한 이 그림은 아라곤 예술가의 혼을 담고 있는 모습으로 고야의 자화상보다 더 유명한 그림이 되어졌다.
모습 하나하나가 너무 섬세하고 고야의 예술가적 기품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던 포르타냐의 고야 자화상은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할 지경이다.
다리를 꼬고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포르타냐를 위해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은 이렇다.
고야는 프록코트와 녹회색 바지, 줄무늬 조끼와 자보(주. 여성복의 가슴이나 깃에 레이스 같은 것으로 단 장식)를 입었다. 그리고 왼손에는 팔레트를, 오른손에는 절반 길이의 붓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고야는 늘 벨라스케스의 오마주답게 이젤 앞에 서 있는 자기 모습을 많이 담았었는데, 그 때문일까? 포르타냐 역시 고야의 모습 뒤에 이젤을 놓아줌으로써 고야의 예술에 대한 헌신을 담아냈다.
스페인의 내적인 어려움의 시기를 직접 겪고 그 상황 속에서 온전한 정신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야의 그림은 더더욱 잿빛과 어두움의 황제가 된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울분과 분노를 토해내었던 그의 얼굴에 이리도 환한 미소가 그려지다니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퀸타 델 소르도의 14작품 중 사투르노(크로노스)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지난 날이 결국 자신의 자아에서 시작되어짐을 깨닫고, 원망과 불평보다는 이제 과거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 다시금 평범하게 웃고 울던 국민들의 삶에 다가가기 시작을 한 것일까?
고야 초기의 그림에서 보는 평안함이 얼굴 가득 묻어난다. 이 순간의 모습을 포르타냐 역시 놓치지 않고 담아내었기에 이전에 말한 것처럼, 고야 자신의 자화상보다 더 훌륭한 초상화임을 인지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 순간을 사랑했고
그 자리를 아꼈고
그 곳에 함께 한 이를 가슴에 품었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태양은 화사하게 미소를 짓는다.
@namu.art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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