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미술관 이야기 두번째 책 집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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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너스와 아도니스 그리고 큐피드
Venus, Adonis and Cupid. Ca. 1590. Oil on canvas.
Room 026
CARRACCI, ANNIBALE 1560-1609
중세 시대의 그림은 주로 합스부르크 왕조의 기틀 속에서 성장해 감을 보게 된다.
물론, 메디치 가문의 전폭적 후원으로 르네상스의 화려함이 시작되었고 특히, 카라치는 색채의 마술사인 티치아노 이후의 색채 마법을 마음껏 구사하게 된 화가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인체의 신비스러움은 마치 고전주의의 흐름을 그대로 끌어온 듯 한 느낌과 아울러 후에 루벤스에게서 보게 되는 인체의 신비로움과 역동미를 미리 보는 듯 한 차각을 일으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세의 그림의 장점은 바라보는대로 생각하면 그 그림의 의미들이 살아나는 것처럼, 카라치의 이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사랑에 대한 시작이 큐피드에 의함을 알려주면서 늘 불안해 하는 비너스의 눈빛 또한 우리의 시선을 머물게 한다.
미의 여신임에도 불구하고, 누드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외형적 몸매가 아닌 아도니스를 바라보는 근심의 눈빛이 더 강렬하게 다가옴을 느끼는 작품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도니스는 여전히 패기로 무장한 눈빛이 가득하다.
사냥을 통해 자신의 무용담을 즐기는 아도니스에게 비너스의 근심어린 눈빛과 염려의 당부는 흘려버림을 무심하게 다른 곳을 쳐다보는 흰색의 개와 ‘왜? 모를까?’하며 자신의 주인을 쳐다보는 검은색 개의 시선처리는 그림 속 아도니스의 모습을 완벽하게 대변하는 모습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늘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듣게 되고, 들린다.’
아도니스도 자만감일까?
결국, 그 자만심으로 목숨을 잃게 되는 안타까움에 비너스도 손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비극적 사랑의 시작은 다른 사람이 아닌 비너스의 아들 큐피드의 화살로 인해 시작됨을 알리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비너스의 가슴에 화살을 꽃고 그곳을 자신의 손으로 가리키며 웃고 있는 큐피드의 익살스러움 속에 행복의 의미는 미소를 동반함을 느끼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항상 밝지 않은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카라치는 그것을 넘어 사랑의 뒤에 다가오는 험난한 삶의 이야기를 이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눈에 콩깍지가 씌였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랑이라는 말에 모든 것을 걸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고 하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아도니스와 비너스의 삶은 너무나 비참하다.
꼭 아도니스 자신의 어머니의 삶의 모습을 보는 듯 해서 그런지 이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은 사랑하는 아름다움보다 근심과 염려의 눈빛이 너무나 강렬하다.
특히, 배경에 등장하는 작은 부분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더 아프다. 아도니스의 뒤편에는 높은 협곡이 보이고 그 협곡 정상에서 멧돼지와 싸우는 아도니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도니스는 자신이 가진 창으로 멧돼지의 옆구리를 찔렀으나, 멧돼지가 자신의 어금니로 결국 아도니스를 찔러 죽임으로 이 상황은 비극으로 끝나며 예언의 신탁은 완성됨을 알려준다.
과연, 이 신탁은 필연일까? 만들어가는 걸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많은 현상 속에서 ‘탓’으로 돌리기에 바쁘다.
내 문제가 아니면 그렇게 절박하지도 않다.
그러다가 내 문제가 되어지면 정말 절박함에 부르짖고 ‘왜?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는가!’하고 반문을 한다.
삶의 아이러니함이다. 과거나 현재나, 현실이나 가상이나 모두가 한결같은 상황 속에서 벗어나지 못함음 아직도 이 상황의 해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비둘기로 구성된 마차를 타고 다니던 미의 여신 비너스의 아름다움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는 아름답고 요염함이라는 단어가 사라져버리고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의 시선을 받게 됨을 본다.
아마도 비너스가 비둘기를 마차로 삼고, 비너스의 주변에 항상 비둘기가 있던 이유는 비너스가 정말로 자신이 가고 싶어 했던 곳으로 돌아가고픈 내면의 마음을 드러낸 것은 아닐까?
세상에서 ‘회귀본능’이 가장 뛰어난 것이 비둘기라고 하지 않던가!
베로네세의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그림도 곁에 함께 전시되어 있다.
두 그림의 비교를 하면서 바라보는 재미도 있지만, 카라치의 그림은 바라볼수록 카라치 스스로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 했던 모든 언어가 귀로 들려지는 느낌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화려함과 아름다움보다 뒷배경으로 인해 색채감을 통해 우리의 시선이 무엇에 집중되어야 함을 알려주고, 또 하나하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 바로 카라치의 비너스와 아도니스 그리고 큐피드이다.
아름다움은
바라보기보다
가슴에 담는 것이기에
내딛는
걸음 걸음이
하나의
사연이 된다.
@namu.art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