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쿰척 Aug 13. 2021

#14. 독불장군이 회사생활 하는 법

막무가내 오대리의 개X마이웨이

옆팀 오대리의 회사생활 스토리는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내가 입사한 지 일주일이 채 되었을 까, 난 그때 오대리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오대리 : 85년생, 남, 미혼, 열정적인 소개팅 헌터, 동기보다 2년 늦게 대리 승진, 이 시대의 마이웨이

오대리는 내가 입사했을 때, 대리로 승진하였다. 처음 오대리의 이름을 들은 건 이 승진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의문들 때문이었다. 


> 이제 오대리네~? 와.. 저 사람도 승진을 시켜주긴 하는구나.

>> 그러게요. 저희 회사도 어쩔 수 없나 봐요. 2년만 버티면 대리도 달게 해 주네요. 

>>> 그래도 역대급으로 늦은 승진 아니에요? 


난 그때 당시 오대리란 어떤 사람일까. 도대체 얼마나 일을 못하길래 저런 평판인 건가. 궁금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가 어떤 사람인 지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화장실을 가려고 복도를 나서는 데 어떤 사람이 그 시간에 출근을 하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해봤더니, 9시 30분. 유연근무제 따위는 없는 우리 회사에서 이러한 출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괜한 의심을 하기 싫어서 인터넷에 "출근길 사고"도 검색해보았지만 별거 없었다. 급한 사정이 있었겠거니 생각하였다. 그러고 한 이주일쯤 지났나, 같은 사람이 또 10시경에 출근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는 누구보다 당당한 발걸음으로 로 사무실에 들어갔고, 난 그제야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저렇게 출근 시간이 자유롭지?"

이제 나도 회사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주변 사람들과 친분관계를 쌓은 시점에 주변 사람들을 통해 그 자체 자율출근을 하는 사람이 그 "오대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오대리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오대리는 전산실 소속으로 시스템 정비 및 마비 방지를 위한 점검을 한다. 그러다 보니 야간작업이 종종 있었고, 그럴 때마다 다음날 자체적으로 출근시간을 조정해왔던 것이다. 만약 3시간 야근을 했다면 3시간 늦게 출근하는 형식이었다. 야간 근무는 초과수당이 지급되는 정당한 근무였고, 우리 회사는 굉장히 보수적이라 수당 지급 외에 편의를 봐주는 것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오대리는 스스로 규칙을 정해서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금방 회사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고, 그는 인사위원회까지 회부되었지만 주의조치만 취해질 뿐 달라진 것은 하나 없었다. 그나마 인사위원회 이후에 10시 이전에 출근하는 거지 그 전에는 오후에 출근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내가 몰랐던 오대리의 모습은 무궁무진하였다. 

회사 내 시스템 문제로 인한 민원 요청이 들어오면, 오대리는 그때그때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였다. 단순 업무여도 본인이 하고 싶지 않으면 며칠 동안 처리를 미루는 일이 다반사였다. 자리에 앉아 있어도 전화를 받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이 난감한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다. 팀장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오대리 사전에 "네"라는 말은 없었고, 그에게는 "시간 되면요~"만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일 처리뿐 아니라 평소 행실에도 문제가 있었다. 

우리 회사는 출근 순서대로 좋은 자리를 선점하여 주차를 하는데, 오대리는 늦게 출근하면서 장애인 혹은 임산부 지정석에 주차를 하였다.(둘 중 어디에서 속하지 않지만). 


오대리에 진상을 알게 된 이후 그의 행동에 눈이 갔다. 진짜 소문 그대로 행동하였다. 하지만 그는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해 보였고, 말 그대로 네이트 판에서나 볼 수 있는 개X마이웨이였다. 같이 일하면 너무 화나고 정말 싫을 것 같았지만, 멀리서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니 어떻게 저렇게 살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하였다. 지구인이 외계인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를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일관된 마이웨이에 관찰도 지겨워질 때쯤 감사 시즌이 돌아왔다. 자료 제출과 소명서 작성으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던 와중에 오대리가 또다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 오대리 감봉이라며?

>> 감봉에 승진점수 마이너스 10점이래. 아, 그리고 한 달간 강제 교육이라던데?


충격적이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긴 하였지만, 감사결과로 개인에게 이 정도의 징계는 처음이었다. 감사를 통해서 소명서 작성과 주의 조치가 내려진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감봉에 승진 불이익까지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확인해보니, 최근 10년 내 처음이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약 1천만 원 이상의 손해다. 


강제 외부교육을 받으러 간 오대리는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한 보름쯤 지났을 까? 오대리가 우리 실에 빵과 커피를 들고 찾아왔다. 

> 안녕하십니까? 제가 지금 교육 중인데, 잠깐 들렀습니다. 바쁘신데 빵이랑 커피 좀 드시고 하세요.

  저는 보름 후에 뵙겠습니다. 고생하세요~ 


오대리는 한마디 말만 남긴 채 사라졌고, 그렇게 다른 실에도 다과를 돌렸다고 한다. 그리고 전산실에서는 사람들에게 개별 선물도 하고 공석의 미안함을 전했다고 한다. 평소에 아무리 큰일이 있거나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눈 하나 끔뻑거리지 않던 오대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전산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동안 오대리는 그들을 투명인간 취급했다고 했다. 본인의 이름도 모를 것 같았는데, 그런 오대리가 실 사람 모두에게 맞춤형 작은 선물을 돌렸다는 것이었다. 신혼에게는 디퓨져, 아이를 가진 선생님한테는 인형을. 


오대리는 아직 업무복귀를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오대리는 이전의 오대리와는 다를 것 같은 느낌이다. 

막무가내 마이웨이도 회사생활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이전 01화 #13. 회사에 친구는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