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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쿰척 Aug 18. 2021

#15. 언제부터 그렇게 미식가셨죠?

회사생활에서 괜한 시도는 금물




우리 회사명은 아무도 모르지만, 00 회사의 자회사라고 하면 다들 "아~"하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회사에 대한 정보 없이 00 회사 이름만 듣고 입사한 사람들도 대다수였다. 평소에 평사원들이 00 회사의 직원들을 만날 기회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1년에 딱 한번 한 달 동안 00 회사 직원들과 같이 일을 하게 된다. 바로 감사 시즌이다. 


가을이 되면 본사에서 우리 회사의 전반적인 부분의 감사를 진행한다. 재무부터 운영까지 회사 내 모든 업무를 하나씩 건드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사 시즌에는 본사 감사팀 직원들이 우리 회사에 한 달 정도 상주한다.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본사는 우리 회사와 차로 한 시간 거리이지만, 그들은 꿋꿋이 한 달 꼬박 이 누추한 곳에서 냉철한 감사를 진행한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올해 감사는 우리 실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 실장님의 로비가 있었던 것 같다. 실장님은 감사팀이 오기 한 달 전부터 부서원들을 달달 볶았다. 김 팀장님한테는 회의실 예약 및 다과 준비를, 이 팀장님한테는 일정 관리와 자료 준비를, 박 팀장님한테는 도시락을 준비를 요청하였다. 박 팀장님이 도시락 요청을 받자마자 날 쳐다봤다. 알고 보니 실장님이 코로나 때문에 매끼 밖에서 먹기 어려우니 도시락을 시켜먹자고 제안한 것이다. 

> 서현 씨. 서현 씨가 센스가 있으니까. 이번에 감사팀 도시락 식사는 서현 씨가 좀 알아봐. 서현 씨가 맛있는 데 많이 아니까.


도시락은 맛있는 데를 시키면 본전이고 혹여나 한 번이라도 선택을 잘못하면 욕먹기 십상이었다. 심지어 우리 실 사람들도 아니고 본사 사람들한테까지 대접을 해야 한다니. 욕먹을 대상이 10명은 더 추가된 것이었다. 정말 싫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다른 사람한테 부탁을 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 것이 백배는 더 편할 것 같았다. 그렇게 감사팀 방문 한 달 전부터 난 한식, 양식, 중식, 패스트푸드, 분식 종류별로 점심 배달 가능한 도시락 가게 리스트를 만들어 놓았다. 올해 나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입무라고 생각이 되었다. 


드디어, 본사 감사팀이 우리 회사에서 상주하는 날이 다가왔다. 본원 감사팀은 실장급 1명, 대리 급 3명, 사원 3명으로 이루어졌다. 난 실장님과 상의하여 도시락을 시켰고, 한 보름 정도 별문제 없이 도시락 주문에 성공하였다. 아무리 사전에 도시락 리스트를 작성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보름 정도 지나니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도시락은 시킬 수 없었다. 그리고 다들 도시락 맛은 큰 불평이 없었지만, 새로운 메뉴를 먹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목요일 오후에 박 팀장이 나를 따로 불렀다.

> 서현 씨. 내일은 햄버거나 샌드위치 시키는 게 어때? 실장님이 새로운 음식 먹고 싶어 하시는 눈치더라고. 이번에는 서현 씨 또래가 먹는 핫한 거 시켜봐.

>> 아 넵 알겠습니다.


핫한 거라. 다들 왜 이렇게 핫한 음식을 좋아하는지. 아무래도 핫 한 거를 회사가 아니고는 접할 길이 없는 눈치다. 목요일 오후는 핫한 메뉴를 고민하다가 퇴근 시간을 맞이하였다. 굳이 새로운 걸 시키자고 하셨으니, 금요일은 에그드랍을 시키기로 하였다. 혹시나 양이 부족할 수 있으니, 인당 다른 맛으로 2개씩 준비하였다. 급하게 준비하였지만, 배달이 가능하다고 하여 안심하고 퇴근할 수 있었다. 


금요일 점심이 되었다. 배달시킨 에그드랍 샌드위치가 따끈따끈하게 제때 도착하였다. 난 후딱 회의실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에그드랍을 두 개와 콜라와 사이다를 차려놨다. 내가 봐도 군침도는 비주얼이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내일은 주말이니 도시락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콜라 한잔을 마셨다. 맛있는 에그드랍과 함께 점심시간을 보내고 다시 업무를 시작하려고 메신저를 켰다. 


메신저를 켜자마자 이대리님이 메시지를 보내셨다. 입사이래 거의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분이라 당황했다. 

> 서현 씨. 오늘 점심에 에그드랍 서현 씨가 시켰죠?

>> 네. 무슨 문제 있었나요?

> 아뇨. 전 너무 맛있었어요. 근데 다음 주 월요일에는 도시락 안 시키셔도 될 것 같아요.

>> 네? 왜요? 나가서 드실 수 있으신가요?

> 그게 아니라, 에그드랍 때문에 일파만파 난리가 났어요. 

전말을 이러하였다. 이대리님은 업무상 본사 감사팀과 같이 식사를 하셨다. 식사 중 평소와는 다른 메뉴에 사람들이 적잖이 당황하였다고 한다. 실장님이 오늘은 새로운 메뉴로 준비해보라고 했다고 요즘 유행하는 메뉴라고 부연설명을 하셨지만, 먹는 내내 본사 사람들이 불만이 끊이질 않은 것이다. 본사 사람들은 회사 주위 프렌차이즈는 취급도 안 해서 거의 폐업 직전이라고 한다. 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본사 실장님이 본사 주변에 수제 햄버거 가게, 수제 샌드위치 가게, 고급 샐러드 가게 등 본사 주변에 맛집으로 소문난 가게들을 하나하나 소개해주셨다고 한다. 


이대리님은 여기서 끝나는 줄 알았는데, 대화는 봇물 터지듯 계속되었고 결국 다음 주 월요일에는 본사 근처 수제 샌드위치 가게 점심을 드시기로 하셨다고 한다. 이대리는 빠르게 본사까지 많은 인원이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아보는 와중에 본원 실장님이 이대리의 걱정이 무색하게, 본사 사원님께 월요일에 샌드위치를 픽업해서 우리 회사로 출근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본사 감사실장은 신나서 맛있는 건 여럿이서 다 같이 먹어야 한다며 사원님께 어차피 출근하는 거 월요일에 오는 길에 몇 개 좀 사 오라고 한 것이었다. 말로는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본사에서 우리 회사까지는 차로 한 시간 거리이고 샌드위치는 적어도 10인분 이상이 필요했다. 사원분 혼자서 많은 양의 샌드위치를 사 오는 것도 힘든데 그 거리를 운전해서 출근시간까지 맞춰서 출근해야 했다. 


난 같은 막내로서 본사 사원분의 기분이 너무 이해가 갔다. 그는 그다지 먹고 싶지도 않은 샌드위치를 위해 아침잠을 포기하며 분주하게 일주일 시작을 해야 했다. 지나가면서 인사한 게 전부인 분이었지만, 내적 응원을 해드리고 싶었다. 


월요일이 되었다. 본사 사원분은 내가 출근하기도 전에 샌드위치를 사서 출근을 하였다. 그는 우리 사무실에서 혹시 보관한 곳이 있냐며 점심시간까지 소중한 샌드위치님의 거처를 걱정하였다. 본사 감사실장님은 아침부터 샌드위치를 찾으셨다. 사원분이 샌드위치 점심시간까지 냉장고에서 보관하려고 한다고 전하자,

> 김사원. 샌드위치는 아침이지~ 누가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먹나? 지금 하나씩 나눠드려. 우리 본사 맛을 자랑해야지.


그렇다. 샌드위치는 아침용이었다. 감사실장님은 점심이 아니라 아침용으로 샌드위치를 사 오라고 한 것이었고, 점심은 내가 따로 준비를 했어야 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본사 막내 김사원 님은 부랴부랴 샌드위치를 나눠주기 시작하였고, 난 빨리 자리에 앉아 점심 도시락이 가능한 곳을 서칭 하였다. 


잘난 샌드위치 덕분에 도시락 하루 건너뛸까 기대하였지만 이는 내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았고,

그 잘난 멀리서 배달 온 샌드위치는 샌드위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감사실장님이 그렇게 번거로운 일을 시켰다고 했을때, 정말 뛰어난 미식가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저 익숙하게 매일 먹는 걸 좋아하는 분이었고 새로운 시도를 꺼리는 것이었다. 


난 새롭지 않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딱 그 정도의 도시락만 찾기로 하였다. 

회사생활에서 새로운 시도는 사양한다. 그 이유는 한 번 해보면 바로 깨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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