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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퐁 Oct 17. 2022

다음번에도 버틸 수 있을까?

독립의 반대말은 의존이 아니라 고립이다.


 누구에게나 의존과 돌봄 없는 독립은 불가능하다.

 - 장애여성공감 20주년 선언문,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 (2018)



 몇 년 전, 심한 독감을 앓았던 적이 있다. 38도의 고열 속에서 나는 머리에 수건을 대고 이온음료를 마시다가 앰뷸런스를 불렀다.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고 입원 수속을 밟으며 홀로 버티는 삶에 대해 고민했다. 때마침 휴대폰의 전원이 나가는 바람에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도 하지 못했다. 일주일 가량 병실에서 스스로를 케어하면서 생각했다. 고독사는 이렇게 찾아오는 걸까?

 

 생각보다 병원비가 많이 깨졌다. 괴로워하던 찰나 부모가 들어놓은 실비보험이 떠올랐다. 부모에게 연락을 취해 실비를 청구할 수 있었다. 그토록 부모에게서 자립하고 싶었는데. 결국 필요할 때마다 부모에게 연락하는 내가 싫었다. 내 정신병이 악화되고 반목한 끝에 집까지 나왔지만, 내 멋대로 살면서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부모가 있기 때문이란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게 정신병 악화와 트라우마를 안겨준 시골을 벗어나 서울에 짐을 내렸을 때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청년 정책과 사업이 중단되거나 축소되었다. 청년 정책만 보고 서울에 왔는데 몹시 절망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몽땅정보통을 샅샅이 뒤졌다. 전래동화 해님과 달님에 나온 것처럼 동아줄 하나가 간절하던 시절이었다.

 

 때마침 올라왔던 “니트컴퍼니 서울역점” 공고가 아니었다면 마지막 20대를 좌절한 채로 보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무업(無業) 기간을 다채롭게 보낼 수 있었을까?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나로서 지낼 수 있는 공간에서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나는 관계를 통해 치유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었다. 참 운이 좋았다. 2020년의 하반기를 함께 보낸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청년 1인 가구로서 혼자 아등바등 살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지만, 돌아보면 수많은 도움들이 있었다. 개개인의 도움과 정부나 지자체, 비영리 단체 등의 도움 없이 나 혼자서는 자립할 수 없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를 돕고 서로에게 도움받으며 살고 있다. 사람들의 연대와 공공 시스템이 우리를 세상 밖으로 밀려나지 않게 지지하고 있다. 당장 의료보험이 없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병원비를 내야 하는 게 현실이니까.


 해를 거듭할수록 버티기의 난이도가 무섭게 상승하고 있음을 느낀다. 대규모 전염병과 기후위기는 인류의 삶을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만들고 있다. 올해만 해도 폭우로 인해 반지하에 사는 일가족이 참변을 당하고 태풍으로 포항제철소가 침수되었다.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는 소시민들의 지갑을 조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 무역에 큰 타격을 주었다. 부모가 일하는 공장도 전쟁 때문에 일감이 끊겼다는 얘기를 들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늘 최악을 상상한다. 내가 여기서 버티지 못한다면? 가족 중에 중병에 걸려 누군가 간병을 해야 한다면? 개개인이 허리를 졸라매고 버티다 결국 세상 밖으로 밀려나는 결말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전염병과 기후위기, 경기 침체 등의 복합적인 변수 속에서 공공의 역할이 막중할 수밖에 없다. 공공이 인프라와 서비스를 확충해 시민들이 근근이 버티지 않게 노력해야 할 때다.

 

 이런 얘기를 하면 기성세대나 중산층들은 본인들이 낸 세금에 무임승차하지 말라고 한다. 정부나 기업의 의사 결정권자들은 공공 영역의 서비스를 민간 시장에 맡기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원활하게 운영될 거라 착각한다. 하지만 민간 기업은 확실히 책임지지 않는다. 민영화가 되면 공공이 제공하던 서비스를 낮은 퀄리티로 터무니없는 비용을 내며 감당해야 할 뿐이다. 소수의 상위 계층이 부를 축적할 권리를 보장해주면 수많은 취약 계층이 인간답게 살 권리가 밀려난다. 결국 공공복지는 무임승차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 권리, 즉 기본권 보장을 의미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카카오 서버가 있는 SK C&C 판교데이터센터에 화재가 났다. 카카오톡으로 연락이나 공지를 받아볼 수 없다고? 할 수 없이 급한 연락은 유선으로 하고, 집에서 글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근데 웬걸? 브런치 역시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간 올린 글들을 파일로 저장하지 않은 탓에 내 글 역시 서버와 함께 날아간 상태다. (이번 사건으로 큰 교훈을 얻었다.) 지금으로선 무사히 서버가 복구되길 바랄 수밖에.


 언제 어디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찾아올지 모른다. 내가 쓴 글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실감이 난다. 앞으로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 삶에 어깃장을 놓을까? 근미래에는 어떤 사건들이 인류를 긴장시킬까? SF소설이나 블록버스터 영화 속 장면이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아마 내 생각이나 에피소드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상당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나 제도, 시스템 등에 어느 정도 의존하며 함께 잘 버텼으면 좋겠다. 의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약하게 태어났고, 서로를 돌보면서 사회를 만들어왔다. 독립적인 사람은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의존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사람이다. 나 역시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역설적으로 잘 의존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음 달, 다음 해의 내가 어떤 식으로 이 도시에서 버틸지 아직은 모른다. 하나 확실한 건 타인과 공동체, 시스템에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의 도움을 마냥 받기만 할 것은 아니다. 내 방식대로 타인과 공동체에 도움을 주며 상호작용을 할 것이다. 액션과 리액션,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함께 버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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