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각자 자신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하나씩 있을 것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 긍정적인 사람 등등. 누군가 내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바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답한다. 오늘은 "바다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최근 친한 사람들과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다가, '좋아하는 색'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파랑'이라고 답했는데, 대답을 한 뒤에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파란색 계열의 옷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파란색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내가 언제부터, 왜 파란색을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재작년까지도 내게 파란색 계열의 옷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 검정이나 흰색 옷들만이 옷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다지 추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여럿 일어났고,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 중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시간들을 가지게 되었다.
마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얘기를 듣고 있었음에도, 정작 나 자신이 힘들고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나 자신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흰 도화지 위에 여러 색을 칠하면, 마지막엔 흰색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처음부터 흰색이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란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내지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솔직함과 무례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넘쳐나는 자기 과신과 스스로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상대를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만드는 지는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그러한 행동을 여러 번 당했다는 이유로,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는 건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이따금씩 드는 질문에 대한 답은 잠시 뒤로 미뤄둔 채, 홀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 그곳은, 노을이 지는 바닷가의 모습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미리 짐을 풀어둔 뒤 버스를 타고 바닷가로 향했다. 창문 밖으로 조금씩 해가 지는 것이 보였다. 혹시나 차가 막혀 노을 지는 풍경을 놓칠까 봐 가슴 한 편이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도, 하늘은 여전히 아름다운 주황빛으로 물든 상태였다.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코끝이 시큰거리고 귀가 빨개질 정도로 겨울의 바닷바람은 매서웠지만, 짙은 푸른빛을 뽐내며 고요하게 넘실대는 바다는 추위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게 만들 만큼 장관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그런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미뤄왔던 질문에 답을 내리기로 했다.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 이따금씩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돌을 던지고 모래를 뿌리는 등 무슨 짓을 하더라도 금세 고요해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사람.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내면이 깊은 사람. '바다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들이다. 이런 다짐을 한 이후부터 파란색이 좋아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면뿐만 아니라 파란 바다의 색을 겉에도 두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
처음부터 눈에 띄는 사람보다는,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강렬한 향을 풍기며 호기심을 자극하다 금세 질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어울리는 고유의 향을 간직한 사람.덜 자극적이더라도 편안하고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이러한 다짐을 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하루에 여러 번 감정이 요동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망상들을 떨쳐버리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여전히 갈 길은 멀었지만 과거에 비해 조금씩 나아지는 나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며, 오늘도 '바다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쉼 없이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