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힘들게 이별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각자 다른 이별을 한 그들이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대부분 비슷한 뉘앙스이다.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 "그런 면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니까" 누구보다 착하고 다정할 것 같았던 상대방의 숨겨진 어두운 부분을, 그들은 정말로 몰랐던 것일까. 오늘은 "몰랐다기보단 외면하고 싶었던 사실들"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사랑에 대한 주제로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사람마다 각자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도 다를 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타인의 삶에 대해 듣는 건 언제나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새삼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유난히 가슴 아픈 이별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의 연애는 하나같이 비슷하게 흘러가곤 했다. 처음 만난 상대방의 특정한 모습에 끌려 만남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처음과 같지 않은 태도에 조금씩 상처를 받게 된다. 다투는 날들이 잦아지고 그로 인해 생각이 많아지다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해 결국 관계에 마침표가 찍히게 된다. 서로 다른 연애지만 마치 어린 시절 읽던 동화책과 같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로 시작해 '그들은 마침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것처럼 결과가 뻔히 보이는 사랑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바로 '그 사람이 그럴 줄은 전혀 몰랐다'는 말이다. 용서할 수 없는 거짓말을 하거나, 부적절한 이성관계를 맺었다거나 하는 등 자신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온순했던 그들이 언제부터 그런 행동들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들은 열변을 토하곤 했다. 언제부턴가 이런 말들을 들을 때면 머릿속에 한 가지 물음이 떠오르곤 했다. "그들은 상대가 자신의 예상과 다른 사람이었다는 걸 정말 몰랐을까?"
다정하고 착한 사람과, 거짓말을 일삼고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 근본부터 다른 이 두 성향이 과연 한 사람에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더 나아가 그러한 차이를 전혀 티가 나지 않게 감추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내 답변은 '불가능하다'라는 것이다. 영화 '아이덴티티'처럼 최소 이중인격 이상을 가진 사람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만 그러한 가면을 갈아 끼울 때 순간적인 차이까지 감추기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비록 평소 마음가짐이 좋지 못해도, 말은 자신이 얼마나 신경 쓰기에 따라 상대방이 듣기 좋게 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근본적인 마음을 속일 수는 없다. 또한 예쁘게 말을 하더라도 본능적인 행동까지 숨기는 건 불가능하다.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이 말로는 "사람을 때리는 건 나쁜 일이야"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계속 감출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점점 그러한 본성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분노했을 때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지거나, 벽을 주먹이나 발로 치거나,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나 깡통을 발로 차버리는 등 말이다. 이렇듯 스스로 자주 생각하는 가치관이나 신념은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레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상대의 본심을 몰랐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나는 그 이유에 대해 그들이 진실보다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 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즉, 상대가 아무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다고 한들 자신이 그것을 외면하거나 그 모습이 상대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 결론짓는다면 모를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앞서 말했던 예시로 돌아가, 폭력적인 성향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A)과 만나고 있는 사람(B)이 있다고 해보자.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데이트를 하던 중, 둘은 식사를 하기 위해 어떤 식당에 들어가게 된다.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고 주문을 하려고 하는데 마침 A가 고른 메뉴가 재료가 소진되어 주문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종업원으로부터 듣게 된다. A는 순간 버럭 화를 내며, '그런 건 미리 말을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종업원에게 무섭게 따진다. B는 그런 A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당황하지만, 이내 스스로에게 말한다. '저 정도까지 화낼 일은 아닌데... 뭐, 그만큼 먹고 싶었나 보지' B는 애써 A를 달랜 뒤 재빠르게 상황을 수습하고는 평소처럼 식사를 즐긴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둘은 우연히 거리에서 인형 뽑기 기계를 발견한다. B는 A의 기분을 풀고 다시 즐거운 데이트를 하기 위해 A에게 인형 뽑기를 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A는 장난을 치며 호기롭게 도전하지만, 될 듯 말 듯 자꾸만 입구에서 떨어지는 인형을 보며 또다시 슬슬 화를 내기 시작한다. 그런 A를 본 B는 이제 할 만큼 했으니 흥미가 떨어졌다며 A를 데리고 이동하려고 하고, A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표정으로 일어서더니 '순 사기잖아'라는 말과 함께 기계 아랫부분을 발로 쿵 걷어찬 뒤 구시렁거리며 길을 걸어간다. B는 지금껏 보지 못한 A에게서 무언가 불안함을 느끼지만 '나라도 이런 상황에선 화가 났을 거야'라며 애써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상대와의 관계가 정리된 후,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면 '내가 그때 왜 그걸 눈치채지 못했을까'라며 후회했던 순간이 당신도 한 번쯤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엔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어갔지만 이유 모를 불안함이 자꾸만 하루 종일 느껴졌던 순간들. 어쩌면 그 순간들은 당신의 삶이 당신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때때로 처음 보는 모습이 나오더라도, 그것이 상대의 본성이라 의심하기엔 속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상대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상대가 보여주는 모습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그러한 의외의 모습들이 자주 나올수록 당신도 그것을 마냥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기로 한 결정적인 요인들을 정말로 상대가 지니고 있는 것인지 좀 더 주의 깊게 살필 줄도 알아야 한다. 객관적인 사실보다 자신이 보는 것에만 믿음을 주다 보면,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 후에도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어'라는 생각에 매달려 힘든 나날들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라 나름대로 판단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반드시 진실이라고 믿지 않는 태도'를 지니고 살아야 한다. 믿는 동시에 믿지 않는 것. 나는 이것이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할 수 있는 '중도'라고 믿는다. 누군가를 오래 알고 지낼수록, 이러한 마음가짐은 더욱 중요하다. 상대를 바라보는 자신의 믿음이 확고할수록, 그에 반대되는 행동을 했을 때 받을 충격은 훨씬 커진다.
이 말은 상대를 의심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상대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반드시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자신의 연인 또는 배우자가 왜 당신의 믿음대로 행동해야 하는가? 아무리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도 매우 지치고 피곤하다면 평소만큼 당신에게 다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무심하고 퉁명스러운 부분이 많은 사람도 평소와는 다르게 애정이 넘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면 좋은 행동은, 당신의 믿음에 반하는 행동으로 인한 서운함과 이해되지 않음을 표출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다름에 관심을 갖고 그 순간 당신의 감정을 부드럽게 드러내는 것'이다. '서운해'보다 '무슨 일 있어?'라고 되물어보거나, '웬일이래?'보다 '고마워'라는 표현들 말이다.
결국 예상치 못한 상대의 행동들로 인해 이별을 했다는 건, 당신 또한 사랑하는 상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는 것과도 같다.오로지 상대를 좋아하는 감정에 취해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객관적인 사실들은 외면한 채, 자신의 믿음대로만 상대가 행동해 주길 바란 것이지 않은가. 만약 당신이 '네가 날 사랑했다면 나에게 그런 상처를 주지 않았을 거야'란 생각만 하고 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사람을 만나기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내가 만나는 상대의 성향을 바꿀 순 없지만, 적어도 그 사람을 만날지 말지 '선택하는 것'은 당신의 몫임을 기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