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고 말하기 전, 이미 오고 있는 사람들

by Quat


당신은 '사랑'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아마 사랑에 대한 정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와 동일할 것이다. 어느 정도는 비슷할지언정 자신이 믿는 사랑과 똑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정말로 가능할까. 그토록 열렬히 사랑했음에도 마지막엔 아프게 헤어지는 것을 보면,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서로가 꾸준히 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닫게 된다. 각자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는 다를테지만, 오늘은 내가 생각하는, "현명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사랑한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러한 생각에 확신을 갖는 이유는 매우 명확하다. 과거 자신이, 또는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 중 누군가가 '그렇게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먼 거리를 이동해 아주 잠깐 연인을 만난 뒤, 다시 집으로 가는 사람. 자신이 처한 상황이 결코 녹록치 않은데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표현을 하는 사람.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러한 사랑의 힘을 믿는 편이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랬던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결국 사람에겐 각자 타고나는 성향이 있고, 본능적으로 선호하게 되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위대함이란, 사랑으로 인해 모든 것이 실제로 바뀌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이유로 잠시나마 자신의 본능을 억누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 연인을 만나기 위해 주말 새벽에 일어나기도 하고, 운동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연인과 함께 헬스장에 가는 것. 이런 변화가 꾸준히 이어지는 건 스스로 하기 나름일테지만, 어찌되었든 자신의 본능과는 정반대로 행동할 수 있게 만든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본 적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커다란 차이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본능을 억누르거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의 의지로 해본 경험. 소위 말하는 '을의 연애'를 제대로 경험해보고 그 사람과 헤어진 뒤 스스로를 되돌아본 시간을 가진 사람들은, "어설픈 밀당"을 하지 않았다.



아마 당신도 주변에서 한번쯤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두가 그런건 아니겠지만 "정말로 걔가 날 사랑했다면, 그렇게 행동했을까?"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 본인조차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정작 드문 편이었다. 연애경험이 많아지고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줄 사람을 원하지만, 본인이 먼저 그렇게 행동하려고 하는 사람은 적었다. '이 정도 에둘러서 내가 표현했으면 너도 좀 와줘야지'라거나 '내가 이정도까지 했는데 이것밖에 안해준다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건,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리스크없이 '나만을 사랑해줄 바르고 착한 사람'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글에서도 여러 번 말한 적이 있지만 현재 내 곁엔 수는 적지만 좋은 사람들이 여럿 있다. 내가 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전에 겪어온 '좋지 않았던 사람들과의 수많은 경험들' 덕분이었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나를 조종하려 했던 사람. 내가 아닌, 내가 가진 좋은 점만을 취하려 했던 사람. 힘들때만 나를 찾던 사람. 나를 은근히 무시하거나 자신보다 아래 취급했던 사람 등등. 살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끊으면서, 조금씩 '사람을 보는 눈'을 기를 수 있었다. 정말 매력적이고 사랑하고 싶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내가 힘들어질 것 같은 사람과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다. 반대로 첫인상에선 이성적인 호감이 전혀 없었던 사람이었지만, 오래 알고 지낼수록 그 사람만의 숨겨진 매력을 하나 둘씩 찾게 되기도 했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성적인 매력이 느껴져야 일단 사랑이 시작되지 않냐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이성이 만나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외적인 부분이 가장 첫단계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멋진 외모를 가진 동시에 착실하고 배려심많으며 나만을 사랑해줄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있겠는가. 조금 잔인한 말이지만, 그 정도로 완벽한 사람이 나와 만날 수 있을거라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가?



현명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하는 것 중 하나는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기꺼이 내려놓을 줄 안다는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를 보며 호감을 가지더라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상대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고민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내게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판단한다. 반대로 자신 또한 그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얼마나 가지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내어줄 수 있을지 깊게 고민할 줄 안다. 즉, 사랑한다고 막무가내로 덤비는 게 아니라 차분히 기다릴 줄 안다.





개인적으로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수록 나오는 우선순위가 있다고 믿는다. 총 3단계로 이뤄진 우선순위 중 가장 아래에 위치한 것이 '말'이며, 그 다음이 '행동'이고, 가장 상위에 있는 것이 '꾸준함'이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현명하고 아름답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우선순위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사랑에서 가장 첫번째이자 기본이 바로 '말', 즉 표현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가 어떤 식으로 말하는지를 가장 우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표현은 중요하다. 하지만 상대가 내게 말하는 '사랑의 표현'과 '나에 대한 사랑'이 반드시 비례한다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말은 우리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그것 자체가 어떠한 증거가 될 순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집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당신의 연인이 살고 있다고 해보자. 연인은 당신에게 '사랑한다', '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을 믿은 당신은 연인에게 '그럼 잠시라도 얼굴을 보자'고 대답한다. 그러자 연인은 순간 멈칫거리더니 '시간이 늦었다', '너도 피곤하지 않냐'며 말을 둘러댄다. 당신은 이러한 연인의 태도에서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겠는가? 차라리 그런 말을 늘어놓을 시간이었으면 진작에 절반은 왔겠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말을 예쁘게 한다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기본이며 당연한 사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배려해서 말하는 건 '특별한 자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기본 조건'일 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 뱉은 말에 얼마나 책임지는가에 달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하는 것'보다는 '그 말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사랑에 있어서 더 우위에 있다고 믿는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고 행동하며, 그것을 꾸준히 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큰 의미가 있는 말에도 해당되지만, 아주 사소한 말에 책임을 지는 것도 동일하다. 왜냐하면 상대가 지나가듯 한 말임에도 그것을 기억하고 오랫동안 그것을 하거나 하지 않는 건 '사랑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걸, 받는 동안엔 느끼지 못한다. 이미 상대로부터 많은 것을 꾸준히 받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사랑이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에 익숙해져 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하다, 결국 상대가 자신의 곁을 떠나가서야 자신이 '사랑받았다'는 걸 비로소 느끼곤 한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더욱 슬픈 건 그런 사람이 언제 자신의 인생에 나타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순간이 자신의 기준이 되어버려, 누구를 만나더라도 쉽게 행복할 수 없음을 느낀다한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예쁘게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전부 믿지 말라. 말한 것들을 지키지도 못할만큼 뱉어내고서, '말했다'는 사실만으로 퉁치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위험할 수 있다. 표현은 조금 적어도 말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더 나아가 일회성이 아닌,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감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당신과 나, 우리가 되어야하는 동시에 만나야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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