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던 사랑을 받아도 행복하지 않다면

by Quat


당신은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가. 지금까지 어떤 '사랑'을 해왔는가. 누구나 자신이 꿈꾸는 사랑이 있다. 하지만 그토록 꿈꾸고 바라던 사랑을 받았을 때, 예상한 것보다 그리 행복하지는 않다고 느낀 적은 없었는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꽃 100송이를 받고 싶은 로망이 있었지만, 막상 받았을 때 순간적인 기분은 좋았지만 '이걸 어떻게 보관해야 한담'이라며 나도 모르게 뒤처리를 상상했다던가 하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어쩌면 당신이 그토록 원했던 사랑의 형태가, 당신이라는 사람과 맞지 않다고 느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오늘은 "당신이 원하던 사랑을 받더라도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때"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당신은 수천 미터 상공에서 희뿌연 구름을 가르며 하늘에 몸을 맡긴 채 수직으로 떨어지고 있다. 엄청난 속도에 눈은 제대로 뜰 수조차 없으며, 옷은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펄럭이고 있다. 등 뒤에 메고 있는 낙하산이 나의 목숨을 책임질 유일한 도구이다. 만약 낙하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뒤에 벌어질 일은 각자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스카이 다이빙'. 목숨이 열개라도 모자랄 것 같은 이런 행동을, 누군가는 자신의 의지로 많은 돈과 함께 신청한다(여러 번 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똑같은 '스카이 다이빙'이라 해도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만약 평소 스릴과 쾌감을 즐기는 사람이 한 번도 스카이 다이빙을 해보지 않았다가 이러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망설이지 않고 신청할 것이다. 반대로 10층 정도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고개를 내밀어 살짝 아래를 쳐다보기만 해도 다리가 풀리고 아찔함이 느껴지는 사람에겐 '자신에게 돈을 줘도' 절대 하지 않을 스포츠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타고난 성향에, 특정한 경험을 더해 만들어진 자신만의 주관으로 똑같은 대상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가족, 일, 건강, 돈처럼 다양한 대상들에 대해 우리는 각자가 믿는 대로 그것을 어떤 것이라 정의 내린다. 누군가에겐 가족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일 테지만, 어떤 사람에겐 가족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어디 가족뿐이겠는가. 욕구가 적은 사람에게 돈이란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한 화폐라는 의미겠지만, 돈을 '이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 믿는 사람도 존재한다.



무언가를 자신의 기준으로 결론짓는 대상들 중에서, '사랑'만큼 그 기준이 다양한 것들이 있을까. 사랑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할 순 있겠지만, 지금껏 나는 연인들 중에서도 사랑의 가치관이 똑같다고 말한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인간을 '흔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도 사랑에 빠지면 평소와는 다르게 행동하게 된다. 사랑을 하면서도 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하는 건 2가지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상대를 '사랑하지 않거나', 상대가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맞춰주고 있는 것'. 전자든 후자든 그러한 사랑을 정말로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처럼 사랑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을 붙잡고 흔든다. 머리로는 '이건 아니야'라고 생각하지만 몸이 먼저 움직이게끔 만드는 것.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랑이 가진 위대한 힘이자, 무서운 힘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사랑과 관련하여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이 믿고 있고 원하는 사랑'이 정말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랑일까라는 생각이다.





내 경우엔 '일상의 온전한 유지'가 사랑보다 더 우선이라는 입장이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게 아주 중요했다. 사랑이라는 명목 아래 나를 구속하려 들거나, 나의 시간을 지나치게 뺏으려 드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마음이 차갑게 식은 적도 많았다. '사랑하더라도 해야 할 건 해야지' 이것이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해 내가 내린 대원칙인 동시에 사랑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대원칙을 흔드는 일이 종종 생겨났다. 귀찮은 것을 매우 싫어하는 내가, 특정한 부분에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게 몇 번이고 설명을 하고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정말 중요한 내가, 점심을 먹고 나서 5분이라도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를 하고 있었다. 남 일엔 도통 관심이 없는 내가 그 사람이 친구와 어떤 카페를 갔는지, 카페에서 먹은 밀크티의 맛은 괜찮았는지, 밀크티를 마시며 친구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그 대화는 즐거웠는지 등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고 있었다. 대화를 하다가 글을 쓰는 시간이 줄어들어도, 퇴근 후 그토록 좋아하던 혼자만의 시간이 짧아져도 내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같았다. "응, 괜찮아.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내가 왜 이렇게 변하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현재 받고 있는 사랑이, 내가 바라고 원했던 사랑과 조금은 달랐다. 물론 원했던 사랑과도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다른 부분들이 더 많았다. 더욱 놀라운 건 내가 원하지 않았던 그 사랑들로 인해, 스스로 전보다 훨씬 더 좋게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람은 나라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이었다. 친구와 여행을 갔을 때 들어간 소품샵에서 내가 좋아한다고 지나가듯 말했던 물건을 일단 산 뒤에, '이걸 어떻게 줘야 할지' 고민했다며 웃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길치에다가, 운전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뚫고 우리 집까지 3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1시간 반이나 걸려 왔지만 나를 보고 웃어주었다. 심지어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모든 면에서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 사람이었지만, 그 사람은 모든 면에서 움직인 후에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생각하고 움직였다면, 덜 힘들었을 텐데' '미리 찾아봤으면 더 빨리 왔을 텐데' 이제는 그런 것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그 사람 외에 다른 것들도 고려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은 오로지 나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그 사람의 모든 걸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나도 어떤 부분에선 그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한다. 이해하지 못해도 어떠한가.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지금도 신기하기만 할 뿐이다.






SNS나 주변을 보면 저마다의 사랑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따금씩 그런 사람들도 있다. 사랑하고 있음에도 그런 모습이 좋게 보이기보다는, '저렇게 사랑할 거라면 차라리 그만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라고 여겨지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 말이다. 내가 그들이 하는 사랑 얘기를 듣고 느낀 공통적인 느낌은, 그들이 원하는 사랑과 그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사랑에 알 수 없는 괴리감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사랑을 하고 있으면서도 혼자일 때보다 더 많은 고독과 외로움에 둘러싸인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듯하다.



이른바 '좋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를 가르는 딱 하나의 차이가 무엇인지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그들 서로가 자신이 진정으로 어떤 사랑을 원하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라고 답할 것이다. 매우 다양한 사랑의 형태 중에서 자신이 어떤 유형의 사랑과 잘 맞는지를 파악하는 건 정말로 중요하다. '원하는 것'이 꼭 '나와 잘 맞는다'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더라도 자신에게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다면, 집에서 고양이를 기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사진을 보거나 이따금씩 보는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아주 가끔 너무 귀여워서 쓰다듬을지라도 곧바로 약을 먹는다면, 힘들겠지만 그나마 빠른 시간 내에 나아질 것이다.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랑'을 자신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하는 건, 알레르기 있는 음식을 알면서도 자꾸 먹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당연히 힘들 게 뻔히 보이는데 자신의 의지로 그것을 시작했음에도 '힘들다' '서운하다' '왜 나만 이런 건가'라고 하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동정을 넘어 종종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스스로 원한 사랑이 자꾸만 자신을 힘들게 한다면, 다른 형태의 사랑을 사랑이라 느껴보는 시도들도 꾸준히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사랑을 하든 결국 서로가 좋고 행복해야 사랑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한쪽이 그것을 받는데 익숙하더라도 그들 서로가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사랑이다. 물론 그러한 사랑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진 모르지만, 그건 그들이 알아서 해야 할 문제이지 다른 이들이 왈가왈부할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해서 시작한 사랑으로 힘든 시간들이 반복된다면, 자신과 진정으로 잘 맞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깊게 고민할 시간과 그에 걸맞은 행동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는 건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한 성취나 우월감을 느끼기 위함이 아닌, 단지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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