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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두구육(羊頭狗肉)

by Quat


경찰서가 보이긴 해도 그리 가깝지는 않은 위치. 희수는 멈춰 서 있었다. 날씨는 추웠지만 달려와서인지 그의 등줄기를 따라 땀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경찰서에 제 발로 찾아온 경험이 있었을 리가 없다. 처음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실종신고를 하자'는 마음은 나름 확고했다. 하지만 막상 그 과정을 시작하려 하자, 그가 말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영수가 유튜브 라이브 도중 폐가에서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 그날 방송에서 희수가 일정 부분 역할을 맡았다는 것. 그가 건넨 대본과 시나리오가 있었고, 자신은 그 전날까지도 영수와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것. 그 모든 것을 순서대로 꺼내려면, 자신 역시 '단순한 주변인'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야 했다.



희수는 오른손으로 왼손 손가락을 가만히 쥐었다 폈다. 말하자면 자신은 피해자였다. 그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니고, 방조한 것도 아니며, 연출을 주도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도와달라는 친구의 말에, 그저 ‘대본을 읽어준 것’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경찰에게 모든 걸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지금, 영수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뭘 잘못한 건지 계속 신경 쓰이니까’ 이곳에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것이 불현듯 뇌리를 스치자, 목이 말라왔다.



한참을 제자리에서 서성거리다 희수는 천천히 경찰서 쪽으로 걸어갔다. 예상했던 대로 경찰서 안은 한산했다. 오히려 그게 희수의 목을 더 조여 오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당직으로 보이는 경찰관은 자리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모니터를 보고 있던 중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나이대의 젊은 남자 경찰관이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순간 희수는 입술을 한 번 다물었다가, 이내 가볍게 열었다. “아... 사람을 한 명 찾고 싶은데요.” 경찰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보셨어요?” 희수는 몇 초간 말을 잃었다.



“한... 며칠 전입니다. 토요일 밤이었어요.”

“관계는 어떻게 되시고요?”

“친구요. 대학 친구... 지금 연락이 안 돼서요.”

경찰은 키보드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실종자의 이름이 어떻게 되죠?”

“... 최영수요.”



경찰의 손이 잠시 멈췄다. “혹시 주소나 직장, 자주 가는 곳 같은 건 아시나요?” 희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모른다는 건 아니었지만,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말을 계속하다 보면, 영수와 주고받은 대화, 유튜브 방송 이야기, 대본, 대사,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면 그는 단순한 신고인이 아니라 설명을 해야 하는 사람이 된다.



“음... 잘 모르겠어요. 그냥 연락이 안 되길래... 혹시 여행을 간 건가 싶기도 하고...” 경찰의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의례적인 공감의 눈빛 뒤로, ‘자발적 연락두절’에 가까운 상황으로 판단하는 듯한 말투가 돌아왔다.


“혹시 뭐, 최근에 다툰 일은 없으셨고요?”

“아뇨, 전혀요.”

“평소에도 연락이 자주 안 되는 편이었나요?”

“... 네. 가끔 그랬어요.”


희수는 스스로 말해놓고도 놀랐다. ‘가끔 그랬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영수는 늘 응답이 빨랐다. 오히려 자신보다도.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게 괜히 큰 사건처럼 보이면 자신에게도 뭔가 돌아올 것 같았다.



경찰은 아까보다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음, 아직은 실종이라 판단하기 어렵긴 하네요. 성인이기도 하고... 뭐, 여행을 가셨을 수도 있고요.” 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은 어떤 의미도 담고 있지 않았다. 순응이 아니라 회피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냥... 혹시라도 뭔가 들어오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경찰은 마치 기계처럼 희수에게 민원 접수서를 쥐어줬다. 희수도 그것을 한 번 보고선, 접지 않고 그대로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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