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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by Quat


2층 마지막 방 앞에 선 영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손전등을 든 손은 이미 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고 있었고, 반대편 손에 쥔 스마트폰 화면에는 여전히 익숙한 채팅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 방 맞지? 여기서 귀신 제일 많이 봤다던데 ㄷㄷ”
“가자 가자 드디어 나오는 거냐”
“이 방에 들어간 사람만 셋이래 ㄷㄷㄷ”

"화면 흔들리니까 똑바로 좀 잡아봐"


‘여기서… 해야 해.’ 그는 카메라가 향하는 방향을 방 안으로 돌렸다. 오래된 장롱, 찢어진 벽지, 그리고 바닥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장판 위엔 희미하게 동그란 물자국이 번져 있었다. 일전에 조사했던 ‘습기 자국’과 동일한 형태였다. 이 방에서 셋이 자살했고, 마지막 사람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바로 그 공간. 영수는 손전등을 입에 물고 부들부들 떨며 무릎을 꿇었다.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카메라 삼각대 위에 고정시킨 채, 각도를 조정했다. 이제 화면에는 영수의 상반신과 방의 내부, 그리고 그가 바닥에 펼치는 도구들이 함께 담기고 있었다.


“지금부터... 강령술을 준비하겠습니다.”






희수는 대본을 확인하며 채팅창에 맞는 멘트를 입력했다.


“정말로 하시는 건가요? 조심하세요.”


영수는 가방을 열었다. 천으로 감싼 초, 소금, 작은 종, 하나씩 꺼내 바닥에 배치하던 영수의 손이 살짝 떨렸다. 촛불을 켜고, 원을 그리며 소금을 뿌리고, 중앙에 종을 올려놓았다. 마지막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군가, 나와 대화하길 원한다면... 지금, 이 불빛을 통해 나타나라.”


촛불 셋이 흔들렸다. 그건 바람 때문일까, 긴장 때문일까. 희수는 카페에서 화면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화면이 잠깐 어두워졌다가 다시 돌아온 것을 눈치챘다. 카메라 렌즈의 초점이 흔들린 듯 흐릿했다.


“카메라 왜 그럼?”
“아, 또 조작이네”
“헉, 초 꺼짐?”


정확히 그 순간이었다. ‘후우우우우우’ 무언가 사람의 입김처럼, 천천히, 깊게 불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영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화면 속 촛불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꺼졌다. 희수는 숨을 삼켰다. 촛불이 꺼지자마자 카메라 화질은 더욱 나빠졌고, 노이즈가 섞인 듯한 잔상이 화면을 채우기 시작했다. 오디오에서는 바람 같은 소음과 함께 기계가 고장 난 듯한 ‘찍찍’ 소리가 간헐적으로 흘러나왔다.


“... 거기 누구야.”


희수는 촛불이 꺼져 어두워진 화면 너머로 영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떨리고 있었고,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아까보다 몸을 일으켰지만 완전히 일어난 건 아닌 것 같았다. 무릎을 구부린 채로 엉거주춤하게 일어나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 다 봤어... 지금 거기...”


곧이어 발이 질질 끌리는 소리와 함께 영수가 아주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는 듯한 실루엣이 보였다. 마치 등에 아주 무거운 것을 짊어진 것처럼.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한 발을 끄는 소리가 아주 오랫동안 이어지는 것이 희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분명 바닥에 내려놓아 고정되어 있던 카메라의 화면도 아까보다 점점 더 흔들려, 영수가 있는 공간 전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야 뭐야 왜 저래”
“누가 있어?”
“뒤에 뭐 있었냐고 미친;;”


그러다, 화면 너머에서 들려온 짧고 찢어지는 비명. “아악—!!” 순간, 영수의 실루엣이 순식간에 화면 가장자리를 벗어났고 이어지는 건 화면의 정지. 노이즈가 폭주한 듯 화면이 검은 점들로 가득 차올랐고, 몇 초간의 정적 후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꺼져버렸다. 몇 초만에 일어난 상황들에 희수는 멍하니 그 문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채팅창도, 방송창도 모두 닫혀버렸다. 몇 초간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려 했지만, 온몸이 마비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켠 뒤 번호를 눌렀다. 떨리는 손가락이 번번이 잘못된 숫자를 눌렀지만, 간신히 전화를 걸었다. 귀에 댄 전화기에서는 연결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야이 새끼야, 뭐 해... 빨리 받으라고...” 손끝이 차가웠다. 모든 게 예상 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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