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휴대폰을 잡은 채 통화를 하며 매우 화를 내고 있다. 아주 큰 소리로 동네가 떠나가라 고함을 치고 있다. 그 사람을 잘 아는 당신은 이러한 광경에 놀라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당신은 지금까지 그 사람이 평소에 그렇게까지 화를 낸 걸 본 적 없기 때문이다. 통화가 끝나고 씩씩대며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그 사람에게 당신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어본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낸 거냐고. 당신의 말을 들은 그 사람은 묘한 표정을 짓는다. 분노와 후회가 섞인, 살면서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하고 내쉬고는, 당신이 절대 이해하지 못할 대답을 한다. "배가 고파서요."
도대체 이 사람은 왜 그렇게 분노한 것일까? 단순히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이렇게 화를 내는 사람이 있을까? 이 사람이 이토록 '배고픔'에 분노한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인간은 이성과 감정, 두 가지를 가진 존재다. 둘 중 무엇이 더 우위에 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사람마다 제각각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엔 현대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을 감정보다 좀 더 우위에 두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감정적인 면보다 이성적인 면을 좀 더 선호하는 이유는, 이성과 감정이 가진 각각의 고유한 측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은 냉철하며 정확하다. 마트에서 직원이 잘못 계산한 금액을 알아채거나, 서류상의 재고보다 실제 재고가 하나 부족하다는 것을 남들보다 빨리 확인하는 등 자신에게 닥친 현실적인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에 적합하다.
반대로 감정은 추상적이며 불분명하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감정은 그것을 하고 싶게 만든다. 자신이 보고 싶었던 자연 현상을 보기 위해, 몇십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게 만든다. 심지어 무언가를 하려면 목숨조차 걸어야 할 상황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개인이 가진 능력에 따라 가질 수 있는 부가 결정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감정은 이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등해 보이기 쉽다. 감정에 충실한 선택은, 이성적인 선택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달에 200만 원을 버는 직장인이 있다고 해보자. 이 사람은 어릴 적부터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다. 바로 '오로라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오로라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자연 현상도 아닐뿐더러, 그것을 볼 수 있는 지역에 가더라도 정말로 운이 좋아야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이 사람이 자신의 감정에 따라 어린 시절 꿈을 이루기 위해 오로라를 보러 간다면, 한 달 월급은 통째로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오로라를 보러 가는 걸 포기할 것이다. 비록 오로라를 보진 못하더라도 받는 월급으로 필요한 것을 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질수록 감정보다 이성에 기반한 선택을 하는 일이 잦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하는 건, 감정에 따른 선택을 했던 일들이다. 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했던 것들 말이다.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몰래 간식을 먹었던 것부터, 출근하기 전날 갑자기 바다를 보러 갔던 일, 처음 사귄 연인과 1박 2일 여행을 가기 위해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했던 적 등등.
나는 감정이 이성보다 우월하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적어도 감정이 이성보다 열등하다는 의견엔 반대한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을 느낀다. 때로는 슬퍼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즉, 감정이라는 건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림으로, 글로, 노래나 악기로, 자신의 몸으로도 말이다. 그들에겐 자신들이 가진 감정이 곧 자신만의 탁월한 능력이 된다.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앤디가 방문을 걸어 잠근 채 틀어놓은 음악은,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메말랐던 교도소 안 죄수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만들어주었다.
이처럼 감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며, 이성만큼이나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스스로 느끼는 감정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둔감하게 반응한다.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돌아보는 것이 아닌, 그저 그 감정이 해소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서두에서 언급한,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매우 분노한 사람의 이야기가 기억나는가? 보통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사람이 '분노'라는 감정을 느낀 표면적인 이유는 '배가 고프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춘다면, 그 사람은 배가 고프면 미친 듯이 화를 내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
사실 그 사람은 어린 시절 매우 힘들게 자랐다. 매일 밥 한 끼조차 먹기 힘든 일상이 반복되면서, 그는 일반적인 배고픔이 아니라 극심한 굶주림을 경험했다. 어린 시절부터 예민한 사춘기까지 배고픔에 시달리면서 그에게 '배가 고프다'는 건,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한 분노였다. 나이가 어려서 제대로 된 일조차 할 수 없었기에, 그는 그 상황 속에서 참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배가 고프다고 느끼면, 그는 예민해졌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조차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배고픔'을 통해 분노로 발현되는 것이었다.
어떤가?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땐 단지 이상하기만 했던 사람이, 추가적인 상황을 듣고 나니 조금 더 이해되지 않는가?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스스로 느끼는 감정을 되돌아봐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특정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 때문인지 스스로 인지한다면,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에게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해줄 수도 있다. 또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를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도 훨씬 수월해진다.
만약 당신이 별일 아닌 걸로 자주 화를 낸다면, 그건 당신에게 별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툭하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라면, 그 눈물 뒤엔 당신조차 몰랐던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눈을 돌리지 마라.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마주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원인을 안다면 대처는 훨씬 쉽다. 세상에 당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부모님? 사랑하는 연인? 오래된 친구? 전부 아니다. 바로 당신이다. 당신조차 당신을 모르는데, 왜 다른 사람이 당신을 눈치껏 알아주길 바라는가.
감정 수업의 첫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는 것'이다. 굳이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전과는 다른 기분이 들 것이다. 한 번은 두 번이 되고, 두 번은 세 번이 된다. 틈날 때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라. 왜 자신이 화가 나는지, 슬픈지, 우울해지는지 말이다. 감정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것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당신의 얼굴엔 미소가 조금씩 늘어날 것이다. 오늘 감정 수업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