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진료실에서 못한 말 (13)
최근에 초, 중, 고등학교 위센터 자문의로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는 친구들과 학부모들의 상담을 가고 있다.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다양한데 주로 친구와의 문제, 선생님과의 갈등, 성적에 대한 부담감, 가족과의 불화 등으로 힘들어한다. 우울증, ADHD, 품행 장애 등의 다양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친구들도 있으며 이들에게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것을 권유하고 있다. 각기 다른 환경, 유전, 성별, 스트레스 등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지만 대부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부모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이다. 요즘 굉장히 유행하는 ‘금쪽 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을 몇번이라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이의 문제는 대부분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온다는 것을. 내가 소아 정신 세부 전문의로 많은 소아 환아를 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여태까지 본 소아 환자는 과장 없이 100퍼센트 부모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적이었다.
여기서 부모와의 ‘관계’가 비정상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환자나 부모님들이 그 사람 자체는 비정상적이지 않을 때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본 환아의 부모님 중에서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적이고 존중 받을 만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보호자와 의사의 관계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배울 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타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식과 좋은 관계를 맺고 양육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분야이기 때문에 적절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아이와 적절한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부모의 역할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처음에 할 때는 어렵다가 몇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는 전문가가 된다. 은퇴를 하지 않는 이상 우리의 일이 급변할 일은 잘 없다. 하지만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끊임 없이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영유아기 때에는 의식주 모든 것들을 해결해주는 슈퍼맨 같은 역할을 하다가 학령기가 되면 좋은 선생님 같은 역할도 되었다가 청소년기가 되면 어쩔 때는 친구 같은 혹은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역할이 되기도 해야 한다. 모든 부모는 매해 새로 취직했다가 다음 해에 은퇴하는 혼돈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역할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이러한 역할에 대해 무지해서 청소년이 된 자녀를 영유아처럼 키우거나 반대로 학령기의 초등학생을 고등학생처럼 키우는 경우들을 굉장히 많이 보았다. 그러면 아이는 그 때 필요한 적절한 성장을 하지 못하며 이것이 어른이 되어서도 병적 정신병리로 남아있게 된다. 또 더 나아가 자녀와의 적절한 관계를 쌓지 못하고 때로는 얼굴만 봐도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관계가 된다.
아이와 적절한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부모의 역할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한 부모의 역할 중에서 가장 많이 실수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에 대해 방관하는 것이다. 무단 결근, 가출, 학교 폭력 등의 비행을 하는 친구들의 부모님과 상담을 할 때 ‘나는 아이에게 잔소리도 많이 안하고, 때린 적도 없고, 늘 원하는 것을 하게 하며 키웠는데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런 부모님들은 자신이 아이에게 많은 자유를 줄 수록 좋은 양육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당연히 아이가 성장할수록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는 방관과는 다르다. 앞서 말한 부모님들과 자세하게 얘기를 해보면 그들은 자녀들에게 자유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방관과 무관심으로 양육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유와 방관은 엄연히 다르다. 쉽게 예를 들기 위해 당신이 회사에 들어갔다고 생각해보자. 회사에 들어간 첫날 ‘A씨, 내일 두시까지 이 파일을 정리해야하는데 어떤 형식으로 하든, 업무를 언제까지 하든 그것은 당신의 마음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자유이다. 최소한의 틀은 정해주고 그 안에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다. 방관은 회사에 들어간 첫날 아무도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어떠한 업무도 주지 않는 것이다.
자유를 주고 있다고 착각하는 부모님들은 대부분 위와 같이 방관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아이들은 오히려 이렇게 방관을 하면 더 불안해한다. 그래서 그러한 불안감이 우울증 등으로 발현되기도 하며 어쩔 때는 그러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비행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자유와 방관 그 사이에 적절한 선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부모로서의 삶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업무 환경상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고 아무도 부모로서 어떻게 양육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도 이러한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혹시나 지금도 아이와 관계가 좋지 않다든지, 해서는 안될 행동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부모로서 내가 자유를 준다는 명목하에 방관을 하고 있지 않은지 한번 되돌아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