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가 진료실에서 못한 말(3)
미국의 한 유명한 정신과의사가 교도소에 있는 범죄자들을 만나 연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모든 범죄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그들이 잘못이나 문제가 없는데도 억울하게 교도소에 수감되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들은 대부분 살인 같은 흉악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흉악 범죄까지 갈 필요도 없이 우리 주위에서도 그런 경우들을 너무나도 많이 볼 수 있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 혹은 직장을 생각해보자. 주위에 꼭 다른 사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게 만드는 사람들이 한 두명은 있다. 피해자들은 힘들어하고 심지어 우울감에 빠져 진료를 보러 찾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이상하게 가해자들은 늘 문제없이 행복하게 잘 살아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피해자는 오히려 죄책감, 자책감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문제가 없는지 반추하며 부정적인 생각의 악순환에 갇히게 된다. 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더 행복해보이는데 피해자인 내가 억울하게 자책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우리가 흔히 멘탈이라고 표현하는 정신의 힘에는 여러가지 능력이 포함되는 것으로 자아, 자존감, 현실 검증력, 회복 탄성력 등이 포함되며 중요한 능력들 중 하나로 자기 인식의 능력도 포함되어 있다. 자기 인식이라는 것은 자신의 현재 상태나 능력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세상 안에서 사는 자신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인식이 어떤한가도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우울한 사람들은 이 자기 인식 능력이 고장나 있는 상태이다. 세상에 대한 인식과 자신에 대한 인식이 다소 삐뚤어져있는 것이다. 이것은 타고난 부분도 있을 것이고,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 현재의 스트레스 등에 의해 유발 될 수도 있다. 한번 이 능력이 고장나게 되면 뇌는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자기 인식을 하는 방향으로만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면 모든 면에서 자신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수 밖에 없다.
“나는 정말 못생긴 것 같아.”, “오늘 입은 옷도 정말 형편없는 것 같아.”, “나는 왜 아까 그런 실수를 했을까” 와 같은 부정적인 사건들만 발견하고 이것이 자기 비하로 이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배려가 없고 남들한테 피해를 끼치지만 자기 인생은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은 그런 사람들은 다른 의미로 이 능력에 문제가 있다. 그들은 지나치게 자기 인식을 안 하는 것이다. 남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해도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스스로도 잘못된 점에 대해서도 피드백이 안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합리화와 남 탓하기인데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을 수 없으니 환경이나 남에게 그 문제를 덮어씌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어느 시점에서는 이런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도태가 되거나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아주 배울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스스로에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행복하게 지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가까운 가족, 지인들이 조금 어긋난 행동을 하더라도 눈 감아 줄 때가 있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사랑해야 할 자기 자신에게는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모든 것이 내 책임 같고 내 탓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실수하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되짚어 볼 필요도 있지만 모든 짐을 나 혼자 질 필요도 없다. 가끔은 합리화도 해보고, 마음 속으로는 남 탓을 하고, 문제에 대해서 뻔뻔하게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나치면 문제지만 너무 안 하는 것도 문제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고 최소한의 방어 기제이기 때문이다. 본능을 거스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스트레스가 된다.
새로 산 차나 핸드폰 같이 아끼는 물건에 흠집이 나 본적이 있는가? 흠집이 내 눈에 보인 순간부터는 그것 밖에 안보이고 갈수록 흠집이 커지는 느낌도 들면서 점점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애초부터 몰랐으면 오히려 내 마음은 편했을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내 스스로에게 조금 흡집이 있더라도 모르는 것이 정신에는 더 이로울 때가 있다. 옛 속담 ‘모르는게 약이다’ 처럼 힘들 때는 스스로의 흠집에 대해서도 넌지시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가보자.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는 당신이 그렇게 큰 잘못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