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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Dr MCT Oct 07. 2022

오르막과 내리막

정신과 의사가 진료실에서 못한 말(2)

지금은 종영된 KBS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3일’을 종종 챙겨보곤 했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숱한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 중에서 나는 한 취업 준비생이 한 얘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기차를 타고 뒤를 돌아보면 굽이 굽이져 잇는데 타고 갈 때는 직진이라고 밖에 생각 안 하잖아요. 저도 반듯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면 굽이져 있고 그게 인생인 거 같죠. 앞으로도 굽어져 있을 것이고…'


기껏해야 20대 후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청년이 정말 인생을 관통하는 명언을 남겨서인지 아직까지도 그의 말은 인터넷에서 회자되고 있고 나도 종종 생각나곤 한다.


‘선생님 제 인생은 왜 이렇게 유독 험난할까요? 왜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걸까요? 다른 사람들은 평탄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 거의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비슷한 말을 진료실에서 환자분들이 자조 섞인 말투로 내뱉는다. 환자들 뿐만 아니다.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같이 자리를 하고 가끔은 술도 한잔하고 하면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꼭 한 두명은 있다. 얘기는 하지 않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릴 때든 성인이 되어서든 이런 생각을 한적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대체 우리네 인생은 왜 이렇게 험난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복잡한 뇌과학을 지루하게 늘어놓지 않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 뇌는 기본적으로 불행한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어있다. 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불행한 사건 한가지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좋은 일이 세가지 정도 일어나야 된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사람에 따라 경험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정도로 불행한 사건에 우리 뇌는 치중하도록 설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내 인생이 힘들고 고단한 것이다. 


물론 굉장히 힘든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인생이 험난한 상황에 있다면 사람이 자조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 상황이 힘들고 지치는 상황에서 그 상황을 스스로 더 힘들게 만들지 아닐지에 대한 선택권은 자신에게 어느 정도 있다. 정신과의사로서 항상 강조하는 것이 ‘정신력으로만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사기꾼이다. 하지만 의사로서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내가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분명 지금보다는 마음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이 험난한 인생에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그나마 덜 힘들 수 있을까?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최근에 많이 각광받고 조명 되는 방법 중 하나는 마음챙김이다. 마음챙김이라는 이름이 사실 이해하기가 좀 어렵고 원래 용어인 Mindfullness에서 한글화가 되며 약간 다른 느낌의 단어로 해석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쉽게 설명하자면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뒤돌아 봤을 때 나의 길이 너무 굽이져 있고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다고 느낄 때 혹은 앞에 놓여져 있는 길을 봤더니 그 길이 너무 가파르고 굽어 있을 때 우리는 막연한 불안과 슬픔을 느낀다. 특히나 옆 사람의 길을 봤는데 그 사람의 길은 너무 평탄해 보일 때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그 감정은 더 심해진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온 길이나 먼 미래의 길을 우리가 보고만 있는다고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여기에 집중하여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나도 ‘선생님 왜 이렇게 인생이 힘든 건가요?’에 대한 대답을 명확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지만 그 답이 너무나도 잔인하고 차갑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미안하지만 인생은 원래 힘든 것이다. 인생은 원래 굽이져 있고, 오르막 내리막이 끝 없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전혀 없다. 인생이 힘들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할 수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과에는 아직 불확실한 것이 너무나도 많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여기에 충실하게 하나하나 헤쳐나가다 보면 분명히 행복한 순간이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게 인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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