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진료실에서 못한 말(2)
지금은 종영된 KBS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3일’을 종종 챙겨보곤 했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숱한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 중에서 나는 한 취업 준비생이 한 얘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기차를 타고 뒤를 돌아보면 굽이 굽이져 잇는데 타고 갈 때는 직진이라고 밖에 생각 안 하잖아요. 저도 반듯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면 굽이져 있고 그게 인생인 거 같죠. 앞으로도 굽어져 있을 것이고…'
기껏해야 20대 후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청년이 정말 인생을 관통하는 명언을 남겨서인지 아직까지도 그의 말은 인터넷에서 회자되고 있고 나도 종종 생각나곤 한다.
‘선생님 제 인생은 왜 이렇게 유독 험난할까요? 왜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걸까요? 다른 사람들은 평탄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 거의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비슷한 말을 진료실에서 환자분들이 자조 섞인 말투로 내뱉는다. 환자들 뿐만 아니다.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같이 자리를 하고 가끔은 술도 한잔하고 하면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꼭 한 두명은 있다. 얘기는 하지 않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릴 때든 성인이 되어서든 이런 생각을 한적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대체 우리네 인생은 왜 이렇게 험난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복잡한 뇌과학을 지루하게 늘어놓지 않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 뇌는 기본적으로 불행한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어있다. 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불행한 사건 한가지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좋은 일이 세가지 정도 일어나야 된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사람에 따라 경험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정도로 불행한 사건에 우리 뇌는 치중하도록 설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내 인생이 힘들고 고단한 것이다.
물론 굉장히 힘든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인생이 험난한 상황에 있다면 사람이 자조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 상황이 힘들고 지치는 상황에서 그 상황을 스스로 더 힘들게 만들지 아닐지에 대한 선택권은 자신에게 어느 정도 있다. 정신과의사로서 항상 강조하는 것이 ‘정신력으로만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사기꾼이다. 하지만 의사로서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내가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분명 지금보다는 마음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이 험난한 인생에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그나마 덜 힘들 수 있을까?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최근에 많이 각광받고 조명 되는 방법 중 하나는 마음챙김이다. 마음챙김이라는 이름이 사실 이해하기가 좀 어렵고 원래 용어인 Mindfullness에서 한글화가 되며 약간 다른 느낌의 단어로 해석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쉽게 설명하자면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뒤돌아 봤을 때 나의 길이 너무 굽이져 있고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다고 느낄 때 혹은 앞에 놓여져 있는 길을 봤더니 그 길이 너무 가파르고 굽어 있을 때 우리는 막연한 불안과 슬픔을 느낀다. 특히나 옆 사람의 길을 봤는데 그 사람의 길은 너무 평탄해 보일 때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그 감정은 더 심해진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온 길이나 먼 미래의 길을 우리가 보고만 있는다고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여기에 집중하여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나도 ‘선생님 왜 이렇게 인생이 힘든 건가요?’에 대한 대답을 명확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지만 그 답이 너무나도 잔인하고 차갑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미안하지만 인생은 원래 힘든 것이다. 인생은 원래 굽이져 있고, 오르막 내리막이 끝 없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전혀 없다. 인생이 힘들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할 수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과에는 아직 불확실한 것이 너무나도 많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여기에 충실하게 하나하나 헤쳐나가다 보면 분명히 행복한 순간이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게 인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