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진료실에서 못한 말 (11)
얼마전 지인이 갑작스럽게 심도 깊은 질문을 해왔다. ‘공허함과 상실감은 어떻게 구별하나요? 어떤 것이 더 깊은 감정인가요?'라고. 가벼운 질문을 할 줄 알았는데 꽤나 어려운 주제의 질문이라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힐 뻔 했으나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답했다. ‘공허함은 더 어릴 적에 형성되는 깊은 감정이고 상실감은 그것보다는 조금 더 얕은 감정이에요. 그래서 대체로 공허함은 더 극복하기가 어렵고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경향이 있죠.’라고. 지인이 나름 수긍하는 듯하였으나 헤어지고 나서 혼자서 생각을 해보니 충분한 답변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책도 뒤져보고 나름 고민을 해보았다.
만약 초진을 보는 환자가 ‘선생님 시도 때도 없이 공허함이 밀려오고 공허함에 파묻히는 것 같아요.’라고 얘기를 한다면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증상이 쉽지 않다는 것을 직감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공허함은 굉장히 깊은 감정 중에 하나이며 다양한 방법의 치료에도 해결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경계성 성격 장애의 전형적인 증상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혹시나 이러한 진단을 가지는 환자가 아닐까, 공허함으로 인해 자해나 자살 사고가 반복적으로 드는 환자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굉장히 깊은 감정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누구나 살면서 한번씩은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삶의 밑바닥을 경험할 때 누구나 다 공허함을 느끼기 마련이고 가끔은 혼자 있을 때 문득문득 드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공허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 감정일까?
공허함(emptiness)에 대해서 사실 명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마치 기쁨, 슬픔, 사랑 등의 감정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듯이 말이다. 공허함이라는 이름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말 그대로 감정이 혹은 마음이 ‘비어있다’는 말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감정이다. 공허함은 어쩌면 우리가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만큼이나 깊을 수가 있는데 이것은 공허함이라는 감정이 사랑을 배우는 단계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만큼 왜 이런 감정이 생기는지에 대해서도 한가지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우리가 아주 어릴 때 즉 2-3살경에 어머니(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이러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기가 어머니와 좋은 관계를 쌓게 되면 건강한 ‘자기’가 마음 속에 생기기 시작하고 이 ‘자기’가 있어야 공허함에서 조금 자유로울 수 있다. 어머니(양육자)와의 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은 경우에는 ‘나’와 ‘타인’의 구별이 어려워지고 ‘자기’가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하는 공허한 마음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고 나이가 들어서도 이 마음이 재발현 되는 것이다. 또 어머니 혹은 아버지와 닮은 관계에서 그러한 감정이 유독 심하게 생길 가능성도 있다.
반면 상실감은 공허함보다는 조금 더 표면적인 감정이다. 외부의 무엇인가가 없어졌을 때 그것이 상실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그것은 상실감이다. 또 연인과 헤어지거나 친구와 멀어졌을 때 그러한 감정이 상실감이다. 당연히 아프고 힘든 감정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극복이 되고 회복이 된다면 공허함만큼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괴롭히지는 않는다.
공허함은 ‘내면의 무엇인가가 결여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되고 상실감은 ‘외부의 무엇인가가 결여된 상태’를 의미
정리를 하자면 공허함은 ‘내면의 무엇인가가 결여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되고 상실감은 ‘외부의 무엇인가가 결여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감정이 그렇듯이 무 자르듯이 한가지 감정만 생기는 것이 아니고 상실감이 있으며 공허함이, 공허함이 있을 땐 상실감이 세트로 따라오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면에 뚜렷한 ‘자기’가 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아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