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콘 D-750 렌즈에 담은 일기
그새 잎새가 많이 푸르러졌습니다.
차를 타고 달리다보면,
가장자리 인도 쪽으로 걸을 때보다
훨씬 가운데로 모인 시선으로
푸른 가로수길을 한눈에 볼 수 있지요.
그러면 봄이 지고 여름이 드는 게
확 실감 날 때가 많습니다.
날이 슬 더워지고 차림새가 가벼워지면
이제 곧 내 생일이구나, 싶어 기분이 묘합니다.
생동감 넘치는 여름이 오면
아무래도 더 깊이 우울해집니다.
제가 앓고 있는 양극성 정동장애,
흔히들 말하는 조울증의 우울 주기가
유독 도드라지는 게 5월 즈음이거든요.
보통 5월 정도에는,
저에게 일어날 자살 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한 달 정도 병원에 입원하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병가를 내어
직장에 나가는 대신 집에 있곤 했습니다.
가게를 운영할 때는 좀 더 편하게
한달 간 안식월을 가지기도 했지요.
그러면
보통 혼자 있습니다.
운동, 여행 등의 기분 전환으로
쉽게 극복가능한 우울의 단계는
이미 훨씬 지났는데도
저는 여직 누군가의 시선에는
의지가 나약한 사람으로 분류되어
종종 쓴소리를 듣곤 하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조금 서운하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톡 떼어놓고 보면
저만큼 마음이 강한 사람이 또 없는데 말이지요.
부모와 같은 가정 환경등을 모두 제하고
혈혈 단신으로 그들과 붙으면 아마 제가 이길 겁니다.
저는 단단하고 또 선한 사람이라
늘 곁에 좋은 일만 일어나는
별처럼 빛나는 존재니까요.
무튼,
부러 입에 담기 힘든 날들도
돌이켜보면 좋은 양분이 되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올해의 5월은
어떻게 버텨야 할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5년 동안은 누군가를 만나지 않겠노라
주변에 단언(!) 하고 다녔음에도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참 알 수 없습니다
돌연 저와 정말 비슷한,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사람을 만나
편안하고 행복한 연애를 하고 있으니 말이죠.
아마 이 사람과 이번 달은 같이 보낼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 집 강아지 홍시 자몽이도요!
가릴 수록 치부가 되는 이야기라
차라리 글로 써서 맨 앞줄에 세워보려 합니다.
보통 예술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항목들은
추한 것들도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랄까요.
그러면 제 울타리의 문 앞을 서성거릴 뭇 사람들도
조금 더 예의바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한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저를 사랑하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저 말고
가장 저를 잘 아는 사람은
아마 정신의학과 선생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 깊숙한 곳에 뿌리내린
깊은 우울과 자기 비하를 알아봐주는
유일한 존재라고나 할까요.
여름이 되고 달라진 사실이 하나 더 있다면
제가 다니던 대학병원의 주치의 선생님께서
더 깊은 증상을 가진 환자들을 치료하며
본인의 사명을 다하고자 다른 지역으로
자원해 떠나가셨습니다.
가신다는 병원을 알아보니
제가 맨 처음에 입원했던 병원처럼
조금 더 딥한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집중 치료하는 곳이더군요.
"얼마 전까지의 민주씨였다면,
분명 날 따라서 같이 가자고 말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거기는 더 어두운 곳이니
밝아진 민주씨가 올 곳은 아니란 뜻이에요.
새로 오실 선생님도 분명 좋은 분이실 겁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새로 오시는 선생님께 상담을 받아볼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말이죠.
다시 그 긴 시간을 게워내서
몇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라포를 형성하고
기존의 약을 증량할지 말지를 고민하며
부작용으로 고생하고 싶지 않아
기존 선생님을 따라 갈 예정이랍니다.
지금 사는 지역으로 이사 온 뒤
2년 동안 네 분 이상의 의사 선생님을 만나며
겨우 찾은 진료 코드가 맞는 선생님을
어떻게 다시 또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죠.
마음의 병은
사실 알고 보면 뇌와 호르몬 질환이라
비싼 돈을 주고 부러 function MRI를
찍어보지 않는 이상 전적으로 상담 치료에 의존합니다.
그래서 타 과보다 유독 주치의를 많이 타는 곳이지요.
이런 이야기들이 껄끄러울 수 있겠지만
다 털어놓고 싶어 부러 만든 곳이
이 공간이라 애써 수정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가족, 연인, 친구, 사실 그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우니까요.
처음에는 잘 들어줄 지 몰라도
몇 년 째 반복되는, 그래서 평생 안고 가는
이런 증상들과 그런 저를 보는 것이
힘들고 또 질리는 일일 테니까요.
사실 정신적으로 힘들다기 보다는
그냥 몸이 아픕니다. 호르몬의 문제니까요.
아침에 눈을 뜨거나, 찬 물을 마시거나,
날 좋은 날 햇볕을 쬐거나,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거나,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주 사소한 일상에도
이유 없이 돌연 심박수가 치솟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며 속이 메슥거리고
어지러워서 주저앉거나 기분이 급격히 다운되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해
견디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해지는 것이
저의 잔잔한 일상입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데에
별다른 이유나 원인은 없습니다.
그냥 호르몬의 문제니까요.
맹장이 터지는 데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처럼요.
-ep1, 하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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