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일 예쁜 건 너 먹어

너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거라.

by 새이버링

사춘기를 막 지난 십 대의 어느 봄이었다. 아빠가 소일거리로 딸기 밭떼기를 하나 샀다. 수확만 해서 공판장에 내다 팔면 된다고 했다. 나와 언니들은 일일 노동자가 되어 아빠를 따라 짙은 딸기향 가득한 딸기밭으로 나섰다. 꼭지가 상하지 않게 딸기를 따고 크기에 따라 스티로폼 박스에 나눠 담았다. 일당은 짜장면이다. 탕수육까지 떳떳하게 얻어먹으려면 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딸기가 상하지 않게 조심히 떼어야 해서 등에 땀이 났다. 밭에서 쭈그리고 앉아 정성스레 딸기를 따는 내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빠였다. 아빠는 내가 아주 잘한다고 내 등을 툭툭 쳤다. 장성한 인부보다 내 작은 손이 더 야무지다고 했다. 그리고는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와서 함께 아빠를 돕는 언니들과 오빠가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이렇게 제일 크고 이쁜 건 너 먹어.”

“에이, 팔아야 하잖아. 이게 제일 비싸지 않아?”

“너는 먹어도 돼. 괜찮아. 따다가 제일 예쁜 건 꼭 너 먹어."

“아이고, 아빠는... 내가 진짜 다 먹어버리면 어쩌려고? 호호... “


제일 크고 탐스러운 딸기 하나를 떼어 내 입에 기어코 넣어주시는 아빠의 눈이 선하게 빛났다. 주말에 아빠를 따라나선 순순한 막둥이를 향한 기특함과 애틋함이었을까. 아빠가 내 손에 쥐어준 탓에 마지못해 입에 들어온 커다란 딸기를 오물오물 씹어 먹었다. 달콤한 과즙이 입술로 흘러내렸다. "진짜 맛있다."하고 탄성이 절로 나왔지만 결국 녀석이 내 입에 들어온 마지막 ‘탐스러운 딸기’였다. 한 개면 충분했다. 비싸게 팔릴 딸기를 내 입이 더 많이 욕심 내는 건 어쩐지 죄짓는 일 같았다.




십 대 소녀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제철과일을 챙겨 먹이고 싶었지만 작은 스티로폼 박스 한 상자에 3만 원이나 하는 딸기값을 결제하는데 손이 다 떨렸다. 굵고 탐스러운 딸기들. 단단한 딸기 송이를 손으로 만질 때마다 어릴 적 밭떼기에서 딸기를 따던 감촉이 떠오른다. 나는 잠시 머뭇거린다. 귓가에 조용히 울리는 아빠 음성을 외면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가장 탐스럽고 예쁘게 생긴 딸기 한 개를 골라 깨끗이 씻었다. 싱크대 앞에 선 채로, 아이들에게 등만 보인 엄마는 꼭지 딴 딸기과육을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달고 상큼한 과즙이 사방으로 퍼지며 입 안을 호사로 가득 채운다.


‘맛있다.’


나 자신에게 주는 별스러운 호사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내겐 이런 게 다 선물이다. 나 자신을 챙기는 마음. 엄마가 됐다고 해서 탐스러운 딸기가 먹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늘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양보해야 했던 시간 속에서 나를 돌보는 일은 사치라 여겼는데. 어쩌면 아빠가 나에게 알려주려고 했던 건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