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일하다가 피아노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이가 제시간에 안 온 지 며칠 됐다고 했다. 세 번 기회를 줬는데 또 늦어서 엄마에게 통보를 한단다. 내장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올라왔다. 이따 저녁에 만나자마자 말랑말랑 웃는 너를 잔소리로 반길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난다.
태권도 학원에서 문자가 왔다. 새로운 출석 알림 어플이 출시 됐으니 앱을 깔라고 문자가 두 번 왔다. 앱을 깔고 로그인을 시도하는데 업무 전화가 왔다. 누군가 나를 불렀고, 이러저러한 일들로 하여간 아직도 앱 가입을 못 했다.(한숨)
한참 뒤 집에 도착한 아들이 집에 먹을 게 없다고 내게 연락이 왔다. 집에 있으면서 내가 먹으라고 한 것(떡, 요거트 등)은 별로 안 당긴다고 한다. 나는 회사에 있고 저는 집에 있는데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니 탓하기보다는 기지를 발휘해 빠르게 냉동실을 머릿속에서 스캔한다. 치즈불닭 냉동식품으로 합의를 봤다.
하루에도 몇 번씩 e알리미가 온다. 학부모가 된 지 7년째, 여전히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번갈아 오는 알림 중 뭐가 중헌지 종종 헷갈린다. 가끔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알림을 놓치기도 하고 별 볼일 없는 알림에 의미를 뒀다가 괜한 소리를 듣기도 한다.
퇴근 후 서점 앞에 주차했다. 부쩍 수학을 싫어하는 둘째 아이가 어렵지 않게 풀 만한 수학 문제집을 골라 샀다. 그런 다음 <*장 봐주는 언니>에 들러 오늘 저녁으로 미리 주문해 둔 무거운 갈비와 상추를 샀다. 그런 다음 세탁소에 들러 드라이가 완료된 겨울옷들을 이고 지고 들고 와 차에 쑤셔 넣었다.
*장 봐주는 언니는 아파트 상가에 있는 신개념 식료품점이다. 오전에 밴드에 공동구매 알림이 오면 필요한 수량만큼 댓글을 달고 퇴근길에 내가 댓글을 단 상품만 구매해 가는 식이다. 상추 200g은 천 오백 원, 팽이버섯 3개가 천 원이거나, 대파 1kg이 2500원이다. 가끔 회의 때문에 댓글이 늦으면 공동구매 커트라인에서 낙오되기도 한다.
휴. 사무실에서 나온 지 거의 1시간 만에 아파트 지하에 주차를 했다. 내 가방과 아이 문제집과 무거운 저녁거리와 두툼한 겨울옷가지들을 끌어안고 눈사람이 된 나는 뒤뚱뒤뚱 공동현관에 들어섰다. 기다리는 엘리베이터 앞에 하나둘씩 하루를 퇴근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2층, 5층, 11층, 13층을 차례로 들린다. 문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14층 내 집 앞에 도착했을 때, 택배아저씨가 무심히 던지고 간 택배봉투가 나를 반긴다. 현관문을 겨우 열어 이고 지고 온 물건들을 안으로 내팽개친 뒤, 내 손길을 기다리는 택배봉투 서너 개를 질질 끌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서둘러 밥을 차려야 하고....
나는 오늘 하루를 미래에 어떻게 기억할까? 10년, 20년 뒤에 10년, 20년 전 오늘이 기억나지 않을까 봐.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하루를 기록해 본다. 이 글을 읽으면 정신없이 바쁜 것이 당연했던 오늘이 고스란히 떠오르지 않을까? 궁금하다. 이 글을 읽고 10년 뒤, 20년 뒤의 나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혹시 이 순간이 좀 그리울까? 자그마한 녀석들이 밥 달라고,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짹짹대는 지저귐이 숨 막히게 그리울지도 몰라. 텅 빈 집 안, 쓸쓸한 주말에 혼자 앉아 이 글을 다 읽고 이렇게 말할지도 몰라.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