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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아한 사람

by 새이버링

대학 정문으로 나가는 길이란 길이 전부 꽉 막혔다. 졸업식이라 그렇다. 오늘 졸업자들은 축하해주러 온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짜장면을 먹으러 갈 시간이겠지.


교직원의 점심시간.

예약해 둔 맛집에선 지금 같은 도로사정이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시간에 오리탕이 나올 예정이었다. 교내의 다른 출구로 빠져나가더라도 정문 밖 대로를 거쳐가야 했으므로 제시간에 오리탕을 먹기는 글렀다. 나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예약한 식당에 전화를 걸어 오늘이 졸업식이라 정문을 빠져나가려면 30분은 더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30분 뒤에 오셔도 돼요."

점심시간이 줄어든 만큼 가까운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때워야 했다. 친절하게 대답하시는 사장님과 곧 준비될 오리탕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만 더 늦기 전에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양해를 구했다.

"사장님, 이번에는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점심시간이 길지 않아서요. 다음에 꼭 방문하겠습니다."

나는 수화기를 귀에 댄 채로 미간을 찌푸리며 허공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미안할 때 나오는 행동이다. 보글보글 끓고 있을 오리탕이 눈에 아른거렸다. 시계를 보니 내 오리탕은 이미 나와서 식어가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사장님은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하셨고, 나는 다음에 꼭 방문하겠다고 재차 공손히 사과를 드렸다. 내가 주문한 오리탕이 이제 막 그 식당에 도착한 다른 손님에게 즉시 내어지길 바라며 전화를 끊으려는데, 수화기를 통해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 전화를 끊기 전 사장님이 내뱉은 마지막 한마디에 감동하느라 하루를 다 쓰고 말았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아한 사람. 주문한 음식을 되물려야 하니 짜증이 날만도 한데, 그걸 알면서도 난처하게 양해를 구하는 나에게 도리어 감사하다고 하는 게 아닌가. 진심으로 감사해서는 아니라는 걸 안다. 그저 예의가 몸에 배여서, 주문을 취소한 손님도 미래의 잠재 손님이니까 예를 갖춘 것이리라. 넉넉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갖춘 사장님의 면모가 수화기 너머로 느껴졌다. 이 집 오리탕이 소문난 음식인 이유에 사장님의 인성이 한몫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모여든 단골이 많을 것은 안 봐도 훤하다. 나는 꽉 막힌 도로에서 겨우 게이트를 통과해 가까운 식당으로 향하며 자그마한 다짐을 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 어쩔 수 없이 계획이 바뀌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넉넉한 품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말이다.


가본 적 없는 이 식당을 좋아하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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