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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by 새이버링

커다란 스텐 보울에 잘게 자른 오징어, 한국에서 보내온 묵은 김치, 기름을 뺀 캔참치를 넣고 튀김가루 한 봉지를 탈탈 털어 넣는다. 장사는 시드니에서 하지만 튀김가루는 반드시 쌀가루가 첨가된 우리나라 오뚜기 제품을 쓰기로 했다. 주이는 그게 한국음식을 만드는 한국인의 도리라고 굳게 믿었다. 종이컵만 한 크기의 계량컵으로 조금씩 물을 부어가며 반죽을 뒤섞었다. 너무 묽어도 안 되고, 너무 되직해도 안 된다. 뒤섞는 나무 스푼을 쥔 손보다 어깨에 힘이 더 많이 들어갔다. 스푼이 반죽을 이기는 힘으로 대략적인 반죽의 점도를 가늠했다. 원래 맛집엔 레시피가 없는 법.


주이는 K마트에서 산 커다란 전기팬에 식용유를 둘렀다. 반죽을 시작할 때 미리 예열을 해 놓은 덕에 식용유는 팬 위에서 또르르 구르며 가볍고 빠르게 팬을 코팅했다. 일관된 양과 크기를 위해 반죽은 국자를 꽉 채워 한 번 퍼올렸다. 팬 위에 올려둔 8개의 원형틀 안에 차례대로 붓는다. 반죽방울이 팝콘 튀기듯 부풀어 올랐다. 원형틀에 반죽이 묻어나지 않을 만큼 적당히 익었을 때 원형틀을 팬 밖으로 꺼내 차례대로 전을 뒤집는다. 8개의 동그란 김치전이 나란히 줄을 섰다. 주이는 매번 어릴 적 즐겨하던 '붕어빵 타이쿤 게임'이 떠올랐다. 기름을 뿌리고 순서대로 반죽을 붓고 뒤집고 또 뒤집고 꺼내는 일이 타이쿤 게임처럼 아무리 많이 해도 질리지 않았다. 한 판에 8개의 전, 다음 한 판의 김치전을 시작하기 앞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기지개를 켰다.


“언니, 왜 아무도 사람들이 관심이 없을까?”

“곧 오겠지, 기다려 보자.”


북적이는 차이나 타운 옆으로 트램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이쪽저쪽으로 바쁘게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주이는 시계를 살폈다. 12시를 10분 남겨두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배고플 시간이 아닌가? 기름 냄새를 맡고 사람들이 몰려들 줄 알았는데, 행인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마치 이곳이 보이지 않는 유령전집이라도 되는 듯이. 차갑게 식어가는 김치전, 빠르게 흐르는 시간, 주이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고, 진혁의 목소리가 주이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거봐, 사업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


주이는 눈물이 났지만 울지 않으려고 웅크려 숨을 참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건조한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커튼 사이로 동이 트기 시작한 하늘이 보였다.


‘꿈이었구나...’


꿈이라는 사실에 잠시 안도한 주이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바닥까지 차 버린 담요를 집어 아이들 몸에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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