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장례가 끝나고 서준은 경찰에게서 혜린의 유품을 인계받았다. 유품이라곤 가방 하나와 휴대폰이 전부였다.
교사 휴게실에서 약통과 함께 발견됐다는 혜린의 휴대폰은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액정은 부서졌고, 물에 젖어 완전히 먹통이 된 상태였다.
서준은 외곽에서 컴퓨터 수리점을 운영하는 박현민을 찾아갔다.
박현민은 과거에 불법 도박 사이트를 구축해주다 서준의 손에 구속된 적이 있었다. 그는 말기암에 치매를 앓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고, 구속되면 할머니를 돌볼 사람도 없는 형편이었다. 서준은 할머니의 치료비를 후원받을 수 있도록 힘을 써줬고, 출소 후 자립할 때까지 도와주기도 했다.
“이건 복구 못 해요, 검사님. 물이 들어간 데다가 그것도 시간이 좀 지났잖아요. 살릴 수 있는 게 없을 걸요. 음성파일이나 살릴 수 있으려나.”
“동생 거야. 뭐가 됐든 살릴 수 있는 건 아무거나 살려줘.”
처음엔 고개를 젓던 박현민은 동생의 유품이라는 소리에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이틀은 걸릴 거라더니 반나절 만에 박현민은 음성파일을 복구했다.
“사진이나 다른 데이터 같은 건 복구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강남대로 뒤편, 번잡한 유흥가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오피스텔 4층.
변호사 강서준 사무실은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불이 환하게 켜있다.
그의 손에는 혜린의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전원이 켜진 휴대폰에서 약에 취해 가고 있는지 점점 어눌해지는 혜린의 음성이 또렷하게 흘러나왔다.
그녀의 마지막 말,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를 듣다가 서준은 고통에 겨운 신음과 함께 휴대폰을 쥔 채 얼굴을 두 손에 파묻었다.
음성 파일 속 동생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서준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다. 심장을 찢어내는 듯한 고통에 그의 손은 저절로 폰을 꽉 쥐었다.
인권 변호사.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약자의 편에 서겠다고 큰소리치던 타이틀.
하지만 정작 하나뿐인 피붙이 혜린이가 그 지경이 되도록 자신은 무엇을 했는가. 동생이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는 것도 모르고, 아니, 동생의 인권은 관심조차 없었다.
밖에서만 정의로운 변호사인 척, 좋은 사람인 척 해왔다. 그는 혐오감에 책상에 머리를 짓찧었다. 쿵, 쿵, 쿵.
그러나 아무리 해도 서준은 자신이 혐오스럽고 역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
[정의 대신 진실]
“오빠 도대체 한 달 내내 술독에 빠져 살면 어쩌려고 그래? 맨날 늦게 들어올 땐 잠 못 자고 기다리게 하더니 이제는 오빠 해장국 끓이다가 늙겠다.”
“…….”
“출근은 안 하고 허구헌 날 술만 마시면 어쩌냐고. 뭔 놈의 검사가 이렇게 농땡이만 쳐.”
기껏 수사하던 3선 의원의 성범죄 사건을 부장 검사가 덮으라고 지시하던 날부터 서준은 하루도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명백한 증거와 증인을 확보했는데도 수사는 한 발짝도 더 진행할 수 없었고 심지어 자신은 그날부터 수사에서 제외되고 강제로 휴가를 내야만 했다.
휴가가 끝나던 날 서준은 미련 없이 사직서를 부장 책상에 올려두고 그곳을 떠났다.
그날 이후 서준은 억울한 사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권 변호사로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하지만 피해자의 편에 서서 정의를 실현한다고 자부하던 자신이, 정작 단 하나의 혈육인 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혜린의 억울함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언젠가 혜린에게서 인권위 얘기를 들은 기억은 있었다.
“오빠, 우리 학교 선생님 인권위 조사 간다는데 거기 가면 어떻게 돼?”
“뭘 어떻게 돼. 사실 관계 확인하고 안 되면 몇 번 부르겠지. 별거 아냐. 힘든 일 있으면 오빠 찾아오라고 해.”
서준은 혜린의 말에 별 생각없이 대꾸하고 말았다. 어차피 남의 얘기일 거고, 교사들은 별 것도 아닌 일도 크게 생각하는 듯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왜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을까. 남 얘기 하는 애가 아닌데, 왜 그게 혜린이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의논하고 싶어서, 도움 받고 싶어서 고민하다 꺼낸 말일텐데. 난 뭐하는 놈인가. 나 같은 게 무슨 오빠라고…….
서준은 자신이 혐오스럽고 역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
[다이어리 속 작은 불씨]
혜린이 떠난 후 두 달이 넘었지만 서준은 변호사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사무장 혼자 문을 열어놓고 상담 오는 의뢰인들 돌려보내는 일만 반복하고 있었다. 수임료니, 의뢰인이니 하는 것들이 의미 없게 느껴졌고 세상이 끝나버린 것 같았다.
낮인지 밤인지 분간도 안 되는 어느 날, 쉬지 않고 울려대는 휴대폰에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발신자는 혜린이 살던 원룸 오피스텔의 집주인이었다.
“강 변호사님, 오피스텔 월세가 두 달이나 밀렸어요. 집을 비우든 밀린 월세를 내든 알아서 하세요. 그동안 이런 적이 없어서 내가 참았는데 더는 곤란해요.”
오피스텔은 혜린이 지금 학교로 전근 올 무렵 자기도 독립하고 싶다고 해서 서준이 구해준 곳이었다. 보증금이며 월세를 다 내주려 했지만 월세는 자기가 낼 수 있다며 고집을 부렸다.
자신의 월급으로 알아서 월세를 내고 있었으니, 혜린이 떠난 지금 당연히 월세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빈 집의 월세를 마냥 낼 수도 없고 밀린 월세를 보내주고 집을 비우기로 했다. 혜린의 흔적들을 마주하고 자신의 손으로 정리하는 일은 쉽게 마음먹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리하겠다고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낸 후에도 며칠이 지나서야 서준은 혜린의 오피스텔을 찾아갔다. 열쇠 수리 기사를 불러 문을 따고 들어간 혜린의 원룸은 환기를 하지 않아 먼지 냄새가 나는 것 말고는 정갈했다. 침대 위 깔끔하게 개어진 이불, 책상 위에 정돈된 교재와 서류들. 정갈하고 흐트러짐 없는 모습은 혜린의 깔끔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혜린은 흐트러진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경찰은 휴게실에서 발견된 약병과 교무실 책상에만 집중했을 뿐, 혜린이 살던 곳은 제대로 수색도 하지 않은 듯했다.
혜린의 흔적을 보는 것이 괴로워 서준은 서둘러 물건들을 박스에 담기 시작했다. 책꽂이에 빽빽하게 꽂힌 책들을 빼내다가 밤색 표지의 노트 크기 만한 수첩을 발견했다.
직원회의 내용, 학급 전달 사항, 학생들 상담 일정.
꾹꾹 눌러 쓴 글자들이 그 안에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음, 이건 뭐지?’
볼펜으로 덧칠해 지워놓은 글자가 서준의 시선을 끌었다. 동생의 평소 성격답지 않게 거칠게 지워버린 글자가 뭐였을까.
뒷장을 넘겨 이리저리 돌려보며 찾아낸 글자들.
‘현우’, 그리고 ‘학폭’.
‘학폭으로 시달렸나’. ‘학폭인데 인권위는 왜’. ‘이 이름을 왜 지웠지’.
서준은 이 단어들이 혜린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음을 직감했다. 가슴 한가운데서 뜨거운 불덩이가 치밀어 올랐다.
03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