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혜린의 집에서 나온 서준은 오랜만에 사무실로 향했다.
빈 사무실을 지키는 사무장을 퇴근시키고, 서준은 혼자 남아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혜린의 휴대폰을 꺼냈다.
박현민을 찾아 음성 파일을 복구한 날 이후, 서준은 단 한 번도 이 휴대폰을 열어보지 못했다.
흐느끼는 동생의 목소리가 가슴을 찢어놓을 것 같아, 그는 차마 다시 들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서랍 속에 처박아 두었던 것이다
이제 휴대폰을 쥔 그의 손이 떨렸다. 한참을 망설이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깨진 화면 위에서 음성 파일의 진행 바가 일그러진 채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혜린의 목소리가 적막한 사무실 안을 가득 채웠다. 수십 번째 반복 재생 중이었다.
이미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음성이지만, 들을 때마다 서준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비통함과 함께 치밀어 오르는 맹렬한 분노가 그의 온몸을 집어삼켰다. 괴로움에 몸부림쳤을 혜린의 마지막 순간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억울해’라는 절규가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그의 핏줄 선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고,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아니야… 혜린이는 절대 자살할 애가 아니야… 기필코 내가…….”
밤이 깊도록 서준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혜린을 죽음으로 몰아간 자들을 찾아내 반드시 심판하겠다는 결연한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다.
혜린의 교무수첩과 노트북, 메모의 내용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무언가, 음성 파일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결정적인 진실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은 다시 혜린의 휴대폰으로 향했다.
‘학폭’, ‘장애인 차별’, ‘인권위’
서준은 이 모든 연결고리의 핵심이 그 안에 있으리라 직감했다.
서준은 망설이지 않고 다시 박현민에게 연락했다.
잠결에 전화를 받은 박현민은 처음엔 ‘불가능하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갈라진 목소리로 ‘찾아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는 서준의 고집에 결국 두 손 들고 말았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반강제로 혜린의 휴대폰을 넘겨준 지 며칠 만에 박현민에게서 연락이 왔다.
“검사님, 진짜 내가 이 바닥 최고라는 거 인정해 줘야 돼요. 뭔가 찾은 거 같아요. 빨리 와봐요!”
박현민의 말에 서준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다는 아니고 갤러리 일부 복구했어요. 그런데 이거 액정이 깨져서 화면이 잘 안보여요.”
혜린의 휴대폰을 컴퓨터에 연결하자 박현민이 힘들게 복구했다는 데이터가 화면에 천천히 스캔되듯 나타났다.
마치 혜린이 필사적으로 숨겨놓았던, 혹은 너무 깊이 파손되어 뒤늦게 빛을 본 진실의 마지막 조각처럼.
혜린의 사진 앱에는 주로 아이들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사복을 입은 아이들 사진, 일상적인 교실 풍경, 아이들 활동 사진을 넘기다가 자필로 쓴 한 장의 각서를 발견했다.
스프링 노트를 찢어낸 듯한 종이에 볼펜으로 적어놓은 각서였다.
『김민준은 2024년 3월 1일부로 박현우에게 시계값 오백오십만원정(₩5,500,000)을 변상하기로 함. 금액은 매월 말일 50만 원씩 12개월에 걸쳐 상환할 것을 약속함. 상환이 지연될 경우 1일 10%의 위약금을 추가로 물어줄 것을 약속함. -김민준』
두 번째 사진은 학교 복도 한 곳에서 봉투를 주고받는 학생들의 사진이었다. 화면이 어두워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각서로 미루어 김민준과 박현우일 듯 싶었다.
‘학생이 고가의 명품 시계를 차고 다녔다고? 강압과 금품 갈취…….’
박현우, 서준은 며칠 전 혜린의 교무수첩에서 봤던 이름을 떠올렸다. 거칠게 지워졌던 단어. 박현우, 학폭.
‘이 녀석들 이거…’ 혀를 차며 사진을 넘기던 서준은 다음 사진을 보고는 움찔했다.
교복 상의를 풀어 헤친 여학생의 확대된 얼굴. 그리고 다음 장면은 여학생을 둘러싼 남학생들의 실루엣.
정황으로 미루어 캡처한 듯한 충격적인 화면이었다.
서준은 숨이 턱 막혔다. 이건… 그냥 학교 폭력이 아니었다.
‘성폭행에 불법 촬영까지… 혜린이가 이런 걸 알게 된 거였어?’
‘이 아이들은 누구지? 혜린이 학교 애들인가? 이 사진을 어떻게 얻은 거지?’
갑자기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이 사진들은 분명히 서로 관계가 있었다.
‘혜린이는 이걸 찾아내고 폭로하려 한 것일까? 그래서 ‘장애 학생 차별’이라는 누명까지 쓰게 된건가?’
사진 파일을 넘기며 서준은 이를 갈았다.
혜린의 갤러리에는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 수 없는 잔혹한 진실이 담겨 있었다.
‘김민준, 박현우 이 애들부터 찾아야 해.’
혜린이 서준에게 못다 한 말은 바로 이거였다.
“오빠가 꼭… 밝혀줘…꼭…….”
혜린의 유언을 반드시 지켜줄 것이다. 서준은 단호한 걸음걸이로 어둠 속을 향해 나섰다.
05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