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노트북 속 진실]
서준은 혜린의 책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서랍을 열자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로그인 화면이 떴다.
혜린의 생일, 휴대폰 뒷자리, 엄마 생일, 아버지 생일…. 떠오르는 숫자들을 하나씩 조합해 봤지만 '비밀번호 오류' 메시지만 반복됐다. 초조함에 손가락이 떨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혜린아, 비밀번호가 뭐야…….’
더 이상 떠올릴 수 없는 숫자 조합에 조바심을 내며 서준은 숫자키를 눌렀다.
150628
마침내 화면이 켜졌다. 서준은 갑자기 먹먹해져서 키보드에 손을 올린 채 움직일 수 없었다.
2015년 6월 28일. 부모님의 기일
그날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혜린은 말수가 급격히 줄었다. 혜린은 가족 앞에서 늘 쉬지 않고 종알거리던 아이였다. 할 말이 없을 때는 노래라도 흥얼거리고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늘 깔깔거렸던 혜린.
그랬던 아이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서준이 여러 번 물어야 겨우 한두 마디 대답할 정도로 입을 닫아 버렸다. 명랑하고 쾌활했던 예전의 혜린으로 돌아온 건 임용시험에 합격하고 학교에 나가기 시작하면서였다.
서준은 동생이 교사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다시 삶의 빛을 찾은 듯 밝아졌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간절히 원하던 교사가 되었고, 아이들을 세상 누구보다 좋아했던 혜린. 약한 사람을 보고 지나치지 못하던 따뜻한 아이가 어째서 인권위원회까지 불려 다니다 죽음에 이르게 됐을까.
‘혜린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혜린의 노트북 속 폴더들을 하나하나 열어보기 시작했다.
‘수업자료’, ‘가정통신문’, ‘아이들 상담 자료’
혜린의 평소 성격처럼 폴더도 깔끔하게 분류되어 있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특성과 상담 내용을 꼼꼼히 적어둔 생활 기록부 파일, 학부모들에게 보냈던 가정통신문 초고.
재욱이는 사람을 좋아하며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친근하게 대하는, 사교성이 좋은 학생입니다.
은서는 목표 의식이 있고 학습 태도도 반듯합니다. 가정에서 지속적으로 격려해 주시면 기말에는 더 많은 성장이 기대됩니다.
학생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저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저를 믿고 자녀들을 맡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성숙한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지도하겠습니다.
학부모에게 보내는 글에는 따뜻하고 정 많은 교사 혜린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을 다 열어봤지만, 이렇다 할 만한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동생을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답을 찾지 못한 채, 서준은 마지막으로 인터넷 기록을 찾아보기로 했다. 인터넷 검색기록을 열자, 혜린이 마지막까지 찾아보던 내용들이 연달아 눈에 들어왔다.
체험학습 장애 학생
장애 학생 차별
통합반 소통
교사 왕따 고발
학부모 민원 대응
인권위원회 조사
‘이상해, 분명 뭔가 더 있을 거야.’
서준은 박스에 담았던 혜린의 물건들을 모조리 꺼내서 하나하나 뒤져보기 시작했다. 책 한 권 한 권을 펼쳐보고, 학습 교재인 듯한 프린트물 한 장 한 장을 샅샅이 뒤졌다. 마침내, 최근까지 읽던 책인 듯 책갈피가 꽂힌 책을 넘기다가 한 귀퉁이에 적힌 혜린의 메모를 발견했다.
‘반장 어머님, 단톡방, 전화’
혜린은 어려서부터 책을 신주 단지 모시듯 하는 애였다. 책을 접거나 구기는 것도 싫어했다. 성격은 털털한데 책에 대해서만은 결벽증을 보여 책에 낙서 같은 걸 하는 애가 아니다. 책을 다 보고 나면 심지어 띠지까지 다시 끼워서 마치 서점 진열대처럼 책을 꽂아두고는 했다.
‘그런 혜린이가 책에 메모를 했다고?’
책을 든 서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것이 혜린이를 마지막까지 괴롭힌 진실의 실마리일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 찾아봐야 해.’
04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