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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eonggeul Jun 21. 2024

아들아 마음껏 해.

그동안 고생했잖아.

아들은 몸은 사춘기인데 사춘기 같지가 않다.

그러니까 생각은  순수하고 성격은 부드럽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 어린 동생이 있는 환경 때문일 수도 있다.

아들보다 12살이 어린 딸은 이제 20개월이다.


반학기 빠른 국제학교를 들어가서 이제 8월이면 중3이다.

그 무섭다는 중2도 그저 그리 지나갔다. 예쁜 동생 때문일까.


동생이 안 태어났다면 우리는 중3이 된 아들의 학업에 엄청난 투자로 올인을 하며 금이야 옥이야 했다가 결과가 안 나오면 안절부절못하기도 했다가 한 아이에게 온갖 대회며 목표를 이야기하며 닦달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린 둘째가 있어서 첫째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둘째 덕분에 첫째에게 가지는 관심이 분산되긴 했지만 남편과 나는 아들에게 분산된 에너지만큼 학업스트레스를 주었다. 그 스트레스를 예쁜 동생을 보면서 풀었던 거 같다.

자신의 엄마아빠가 자기가 있는데도 자기와 같은 자식을 또 낳다니..  그건 아들과 상의된 이야기가 아니었는데도 예뻐하는 아들.

둘째가 태어나고 부모의 관심이 치우치면 그걸 바라보는 첫째는 집에 남편이 첩을 들여온 처의 심정과 같다고 하던데 첫째는 그런 감정을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이 없는 착한 아이였다.


그러나 육아를 하는 엄마인 나의 입장에서는 느릿느릿 등교시간도 제대로 못 맞추고 숙제도 못 챙기는 아들이 못마땅했다. 벌써 14살인데. 이제는 스스로 할 법도 한 데 스스로 하지 못하는 아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매번  알람은 내 폰에서만 울리고, 숙제를 또 안 해와서 조원들이 페널티를 받았다는 다른 학모의 카톡을 받으면 화부터 났다.

그리고 집에 오면 숙제부터 하는 게 아니라 게임을 하기 시작하는데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숙제를 까먹고 밤이 늦도록 게임만 하고 잤다.


나는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는 자기의 할 일을 문서화시켜 착착해나갈 줄 착각했다. 내 육아는 한 번에 한 명만 가능한 그런 유전자가 있었는지 첫째는 내 바운더리에서 조용히 나가줄 줄 알았다. 그러나 첫째도 육아의 선 위에 놓여있을 뿐이었다. 따로 살림을 차려 나가지도 않았고 바로 어른이 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좀 알아서 해주지 않으련? 하는 말이 속에서 걸어 다니고 있었다.


나이가 많아서인지 그것도 더운 나라에서 12년 만에 다시 육아를 시작하는데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둘째를 보는 게 힘겨울 땐 첫째에게 잠깐이라도 놀아주라고 떠넘기기도 했다. 잘 놀아주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하면서...

 

어느 날

내 눈으로 봐도 첫째는 너무 많은 짐을 진 듯 보였다.

어찌어찌 그런 힘겨운 시간이 지나

우여곡절 끝에 기말고사를 치고 방학을 했다.


방학을 하면 놓을 방 자에 배울 학 자라 하여 배움을 놓는 시기라 주장하는 아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이제 중3이기 때문에 방학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일 일찍 일어나 수영하기와 원서필사를 시켰다. 듣자 하니 다들 방학이라서 호주나 싱가포르 또는 한국으로 여행을 간다는 소식에 나는 딜레마에 빠졌다.


오늘 아침,

방학인데도 아침 일찍 벌떡 일어난 아들의 모습을 보니

그동안 아들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제나 정리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격려나 방법을 차근히 설명하는 단계가 있었나 나 스스로 되돌아보았다.


둘째가 태어나 온 가족이 둘째 위주가 된 우리 집. 그리고 급박하게 돌아간 아들의 해외유학생활.

아들은 저 스스로의 생활을 온전히 이해할 시간이 있었을까.

적응은 한 걸까..


중3.

중요하지만

오늘하루만 저 하고 싶은걸 마음껏 하게 두었다.


"아들아, 그동안 수고했다.

오늘은 너하고 싶은 게임 마음껏 해!"


그랬더니 글쎄,

아들이 시키지도 않은 원서필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놀라웠다.

아들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했다.

내가 아들에게 가진 마음은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순수한 마음이었다.

정말 네가 원하는 것만 온전히 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는 말을 하고선

내 마음도 많이 가벼웠고 또 기쁘기도 했기 때문이다.


믿어주는 것.

존중해 주는 것.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쉽지 않았던 만큼

내 안의 사랑도 쉽게 식지 않는 것 같다.


저 스스로 할 줄 아는데

그걸 하게 하는 건 엄마인 나의 태도에 달려있었다.


너를 믿는다. 아들아.

너는 너만의 달란트가 분명 있을 거고

때가 되면 너도 물 만난 고기가 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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