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가 울리기 전, 사무엘은 잠에서 깼다.
비몽사몽 했던 그의 신경을 단박에 곤두서게 하는 울음이 들려왔다. 기괴하고 무서운 소리였다. 숲 속에서 가장 무서운 짐승마저도 도망칠 울부짖음이었다. 처음에는 이름을 미처 알지 못한 동물의 울음이라 생각했다. 그는 장화를 신고 옷을 걸치고 소리를 찾아 나섰다. 진원지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됐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이런 일에는 늘 앞선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는 최대한 사태를 파악하려고 이리저리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마침 행정관 비시 드 오르가 나타나 물었다.
“무슨 소란입니까? 신성한 의식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란 말입니까? 이봐요 빈센, 어서 상황을 설명해 보시오. 대체 어떤 일로 이리 떼들처럼 모여서 컹컹거리고 있단 말입니까. 저 안에서 울부짖는 가엾은 짐승은 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온몸에 상냥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무꾼 빈센, 그는 한차례 어금니를 꽉 다문 뒤 답했다.
“들어가 보시면 알겠지만 소마르 씨네 아들이 죽었습니다.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말입니다. 소마르 씨는 반쯤, 아니 완전히 미쳐버렸습니다. 죽은 자식의 뺨을 내려찍고, 욕하고 난리입니다. 그렇게 해서 깨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봐요.”
뒤늦게 나타난 메로빙과 함께 비시와 빈센, 사무엘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찌르는 악취에 사무엘은 손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오물 범벅이 된 알몸의 시체, 어떻게 된 일인지 추측조차 어려웠다. 눈에 들어온 건 온몸이 시퍼렇게 변해버린 사내아이, 그는 사백안의 두 눈으로 천정을 바라보고 있다. 인간의 형상을 한 통나무가 연상됐다. 그의 어머니 소마르는 딱딱한 그를 한 번 더 죽일 듯이 내려쳐댔다. 그녀는 확실히 미쳤다. 괴성과 울음이 번갈아 공기를 찢으며 퍼져나갔다. 우리는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돼지 치는 바움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려다가 물렸다. 그녀에게 늑대의 송곳니가 있었던가, 바움은 피 흘리는 팔을 움켜쥐고 서 있었다. 선량한 사내인 탓에 가장 먼저 와서 그녀를 감싸주었으리라. 그래서 가장 먼저 피해를 본 사내인 것이다.
그녀의 성대는 쉬어버려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목에는 굵은 핏대가 선명히 올라왔고, 원래 하얬는지 모를 눈알은 붉은 실들이 마구 뒤엉켜있었다. 마치 인간의 죽음을 마중 나온 존재 같았다. 사무엘은 이다지도 또렷한 관념의 장면을 그림으로 남길 재능이 없음이 아쉬웠다.
‘여인은 인간의 죽음을 처절히 음미, 찬양, 찬미했다. 차디찬 몸에서 터럭만큼의 숨겨진 영혼이라도 쥐어 짜내려고 망자를 집요하게 구타했다. 공포를 잊은 자에게 보여주면 단박에 사시나무처럼 떨게 할 최고의 장면일 것이다. 한때 아름다웠던 여인 소마르, 약간의 수분기도 없이 말라비틀어진 살갗은 힘겨웠을 삶을 짐작케 했다. 그녀의 입 양 갈래 주름은 패인자국이 깊다 못해 실제로는 갈라져 있을 것 같았다. 그 사이에는 쭈글쭈글한 커다란 코가 자리 잡았다. 지옥의 악마나 지녔을 법한 날카롭고 고르지 못한 치아, 주변이 해진 고동색의 눈동자와 회색에 가깝도록 탁한 바탕의 흰자, 사방을 향해 뻗쳐있는 가는 머리칼들, 모두는 충격에 사로잡혀 시간을 얼마간 흘려보냈다. 나는 무엇보다 그녀와 그녀의 죽은 아들에게서 동일하게 뿜어져 나오는 썩은 비린내를 참을 수 없었다.'
유독 사무엘만이 그들의 냄새에 더욱 민감히 반응했다. 그의 의식이 만들어낸 허상일지, 아니면 실재일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인간은 거짓된 것일지라도 그것을 계속 추구함으로써 실체화하고 물들어 버리는 재주를 지닌 것이다. 사무엘은 점점 저 너머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봐! 대체 뭣들 하는 거야? 어서 거들지 않고!”
날카로운 행정관의 목소리에 사무엘의 초점은 현실로 돌아왔다.
여럿이 동시에 달려들어서 그녀를 제압 중이었다. 소리 지르고 침을 마구 뱉는 입에 더러운 헝겊들을 쑤셔 넣었다. 어느새 한 자리 차지한 장로 흄은 사인을 밝혀야 한다느니, 시신에 대한 예를 다해야 한다느니 횡설수설하며 일단 서둘러 시신을 옮길 것을 명령했다. 나무꾼 빈센이 그것을 둘러메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남은 이들은 그것을 막으려 몸부림치는 그녀를 힘껏 제압했고, 저항하지 않을 때까지 꽉 붙들어 맸다. 사무엘은 썩은 냄새를 다시 깨닫고 구토를 견디지 못한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온몸에 오르는 열로 인해 그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그는 꿈을 꿨다. 두 명의 행정관과 다섯 명의 장로는 좁은 방 원탁에 모여 앉아 있었다. 깊숙한 뇌에서부터 뻗어 나오는 뜨거움이 귓구멍을 오그라들게 했다. 고막이 찌르듯 아픈가 싶더니 이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눈은 더욱 선명하게 그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뒤룩뒤룩 살찐 장로 흄은 수평선 너머 갓 떠오르는 둥근 모양의 눈을 갖고 있었다. 그 위에는 선명하게 살찐 눈꺼풀이 있다. 짧은 까까머리를 한 채 커다란 입을 벌려 신명 나게 웃는 그의 얼굴은 거의 몸뚱이에 붙어 있는 수준이다. 목이라고 표현하기에 민망한 살집이 잘게 두세 겹, 뭉텅하게 한 겹 겹쳐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힘차고 또렷하게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고 있다.
또 다른 장로 알레르와 칼이 손사래를 쳐대며 미간을 찌푸린다.
맞은편에 있던 이고르는 탁자를 양 손바닥으로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콧잔등을 있는 대로 구긴 채 매서운 눈으로 여기저기 쳐다봤다. 이윽고 당장 누군가의 목을 조를 듯 양팔을 어깨 높이처럼 올려 무섭게 소리쳤다.
이에 질세라 게라드도 한 마디 나지막이 거든다. 작은 콧구멍은 쉴 새 없이 벌름벌름했지만 땡그란 눈은 깜빡이지도 않고 이고르만을 응시했다. 가느다란 혓바닥을 몇 번이고 날름거렸다.
이마 한가운데 겨우 수십 가닥의 머리카락을 남기고 양옆은 뿔을 연상케 하는 귀를 달고 있는 칼 레도는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행정관 비시는 탁자에 양손을 포갠 채 눈과 입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갈 때마다 아래턱을 내밀었다. 신체 구조상 턱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할 정도가 되자, 그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몇 마디 뒤 메로빙은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며 머리를 뒤 흔들었고, 헨데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흄은 손바닥을 마주치며 만족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로부터 며칠 뒤, 마을에서는 한 마리의 돼지가 잡혔다. 뱃가죽이 등에 둘러붙었던 사람들은 고기 익는 냄새에 환장했다. 무거웠던 마음은 뻣뻣하고 퀴퀴한 고기 몇 점으로 날아갔다. 신성한 행사는 즐거운 축제로 변했다. 그러나 장로 두 명과 빈센은 돌이킬 수 없는 절망에 휩싸인 듯했다. 그리고 결코 즐거울 수 없는 또 다른 한 명, 그녀는 그날 이후 두문불출하여 영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자, 오늘 우리에게 포만감을 안겨준 이 돼지의 성스러운 희생에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합시다.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얻은 활력으로 내일부터 우리는 뭐든 해야 합니다. 오늘은 기쁨을 만끽하고, 내일은 기운찬 마음으로 한 사람씩 토론장에 들어와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왜 이 마을에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자신이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왜 먹어야 하는지, 어째서 이 마을에 존재해야 하는지 그냥 평소에 생각했던 대로 얘기하기만 하면 됩니다. 전혀 어렵지 않아요. 꾸미려 하면 어렵겠지만, 자신의 하루를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되는 겁니다. 전혀 고민할 게 없다마다요.”
흄은 웃는 얼굴과 가벼운 말투로, 사람들이 듣든 말든 말을 전달했다.
즐거움에 흠뻑 취한 이들은 뭐든 받아들이겠다는 듯이 저마다 대꾸했다.
“순서를 정해 내일 집으로 사람을 보낼 테니, 다들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 계셨다가 차례가 되면 비시 행정관의 집으로 오시면 됩니다. 전혀 부담 갖지 마세요.”
기껏해야 돼지 한 마리, 멀건 녹색 실들이 뒤엉켜 있는 구정물들로 그들은 왁자지껄 밤새워가며 즐겼다. 원래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무엘은 정체 모를 물이나 홀짝대며 마셨지만, 그들의 모습이 가히 흥미로워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들의 내면에는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어야 정상이다. 지금이야 잠시 굶주림에서 해방될지라도 다음 식사가 사흘 뒤가 될지, 나흘 뒤가 될지 걱정이 뒤따라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색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처럼 확실한 내일의 어둠을 완벽히 잊을 수 있다면, 순간의 행복에 녹아들 수 있다면, 겉으로 드러난 저들의 표정이 정말 진심이라면, 진정으로 저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현재를 기록할 뿐 거기에 온전히 속해 있지 못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그것들을 읽어보며 지난 일을 후회하고 앞으로 있을 미래를 걱정한다. 사람들의 행복의 비결이 무엇일지 궁금해 나는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 세웠다. 그들은 입에 뭔가를 욱여넣을 때 가장 크게 웃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토악질 나는 혐오스러운 농담뿐이다.’
사무엘은 갑자기 입안에 있던 모든 것들을 바닥에 뱉었다. 그는 입가를 닦으며 회관을 나섰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그는 다음날 아침 종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행정관의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행정관과 장로들이 들어와 있었다. 어제 침묵을 지키던 자들은 그대로 침묵했고, 분위기를 이끌었던 이들이 그대로 기세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