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의 이름 뒤에 숨어 있는 걸 좋아했다. 그 이름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좋아했다. 나도 그랬다.
…간혹 이름이라는 것은 이름을 가진 자의 모든 것이 아닌, 그 자의 아주 구체적인 어떤 것을 함의할 때가 있다. 이때의 이름은 무수한 의미로 분화될 수 있다. 분화에 분화를 거듭하다가 끝내는 이름을 가진 자의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순간이 있을
다. 그 때 이름이라는 건 자신으로부터 가장 먼 징표가 된다.*
하지만 당신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나가 있는 이름이 다시 당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주 순간의 일이었다.
네 이름을 알아
멈추지 않을게.
몇 번 이라도 외칠게.
믿을 수 없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
당신조차 당신의 이름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멀리 있는 이름이어도, 당신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당신은 당신의 이름을 깨닫게 되고, 내내 숨어 있던 이름 밖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너는 왜 이름을 안 불러? 네가 저기, 있잖아. 저기 말이야, 라고 나를 부를 때마다 나는 감쪽같이 사라진 사람 같아. 너랑만 있으면 그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부르는 순간이 어려울 때가 있었다. 나도,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숨어 있는 사람이고, 누군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네 이름을 부르고 싶어 미치겠어. 근데 말이야. 네 이름을 부르고 나면, 모든 것이 깜깜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너랑 있으면 그래. ***
당신의 이름을 처음 부르는 마음으로,
당신에게,
그리고 나는 여기 있다.
* 노이령, 단 하나의 이름 사전
** 아이유, 이름에게
*** 노이령, 요조행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