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고 싶지 않은 길

2016학년도 6월 2학년 학력평가

by 노이령

사람들 중에는 유독 길눈이 밝아 길을 잘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러 번 갔던 길도 잘 못 찾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사람들의 공간 지각 능력에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대뇌의 측두엽 안쪽에 있는 해마와 이를 감싸고 있는 내후 각피질의 신경 세포들로 설명할 수 있다.

1970년대 오키프는 뇌가 어떻게 내비게이션의 역할을 하는지를 밝히고자 기억력과 관계 깊은 해마 연구에 몰두했다. 그래서 실험용 쥐의 해마에 전극을 꽂고 신경 세포가 내는 전기 신호를 기록하였다. 이 방법은 감각 정보가 전기 신호로 바뀌어 복잡한 신경 세포망을 거칠 때, 역치값*보다 약한 자극에는 신경 세포가 반응을 안 하다가 역치값 이상이 되면 반응한다는 점을 이용하였다. 실험 끝에 오키프는 실험용 쥐가 특정 장소에 가면 신호를 보내는 ‘장소 세포’들이 해마의 CA1* 부위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장소 세포들이 주로 시각으로 얻은 정보를 결정적 단서로 삼아 머릿속 지도를 만든다고 밝혔다. 해마는 기억을 단기간 저장하고 있다가 삭제하는 경우가 많지만, 반복과 학습을 거치면 대뇌피질에 장기 기억으로 저장된다. 위치 정보가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면 단서에 의존하지 않고도 길을 찾을 수 있다.

한편 오키프의 영향을 받은 모세르 부부는 쥐의 해마와 그 주변에 전극을 꽂고 실험을 하던 중, 또 다른 신호를 내후각피 질에서 발견하였다. 이 신호들은 장소 세포와 달리 어둠 속에서도 반응하는 특징을 보였다. 또 그 신호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발견되었는데 그 지점들을 이어봤더니 바둑판과 같은 격자 위에 벌집 모양의 정육각형들로 나타났다. 그래서 이 신경 세포들을 ‘격자 세포’라 명명하게 되었다. 이 격자 세포들로 인해 쥐가 지각하는 전체 공간에서 특정 좌표의 위상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좌표들 사이의 거리도 계산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 역치값: 생명체가 자극에 반응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값

* CA1: 인지 능력과 관련되는 해마의 특정 영역을 나타내는 용어



길눈이 어두운 편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어두운 '길눈'으로 더듬어 가는 길을 좋아한다. 차를 타고 가는 길이라면 어쩔 수 없이 네비게이션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게 되지만 걸어서 가게 되는 길이라면면 헤매더라도 한발 한발 더듬어 나가는 편이 낫다. 목적지는 잊지 않는다. 다만 목적지를 가는 길에 보게 되는 건물이나 잠깐 스치는 사람들을 모두 '들르는' 것이다. 그 '방문'을 통해 머릿속 지도를 만든다. 해마의 지도는 저장된 기억을 금방 삭제해버리지만 모든 기억이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길을 또다시 헤매는 일이 없더라도 그 때 보았던 건물의 높이라든가 구조, 구조물이 거느린 풍경들이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한다. 그 때 스쳤던 사람들은 또 어떤가. 어떤 영화에선가, 잠깐 스쳤을 뿐인데 평생을 사랑했노라고, 그런 고백도 있지 않았던가. 그것을 통제하지 못한 변수라고 하지 않는다. 어떤 결괏값에 관여되는 인간의 마음을 변수라 칭할 수 없다. 인간의 마음은 행동주의의 통계 밖에 있다. 아직 날이 환한데도 마치 어둠 속을 더듬어 나가듯이 걸어가는 걸음, 어쩌면 장소 세포를 거슬러, 그 바깥에서 어떤 내부에 대한 단서를 찾고자 하는 마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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