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사람이 가르쳐 주는 방법대로 낚싯대를 드리워 한참 만에 서너 마리의 고기를 낚아 올릴 수가 있었다. 그 사람은 또 말하기를, “고기 잡는 방법은 그렇게 하면 잘 되었네만 고기 잡는 묘리는 아직 깨닫지 못하였네.” 하였다.
그는 나의 낚싯대를 빼앗아 가지고 물속에 던져 넣었다. 그는 내가 낚던 낚싯대와 내가 쓰던 미끼와 내가 앉았던 자리를 그대로 이용하였으나 그가 잡아 올리는 물고기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낚싯대를 던져 넣기가 바쁘게 딸려 올라왔다. 광주리에서 건져 내는 것 같았고, 소반에 올려놓은 것을 세는 것 같았다. 나는 감탄하면서 말하였다.
“참으로 솜씨가 좋기도 하네. 자네, 그 묘한 솜씨를 좀 가르쳐 주겠나.”
“잡는 방법이야 가르쳐 줄 수 있지만 묘한 솜씨야 가르쳐 줄 수 있겠나. 만일 가르쳐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묘수라고 할 수 없지. 그러나 내가 자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곧 자네가 내가 가르쳐 준 대로 아침이나 저녁이나 이 낚싯대를 물속에 드리워 놓고 정신을 집중하여 열흘이고 한 달이고 그 방법을 익힌다면 그 묘법을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일세. 그렇게 되면 손은 알맞게 움직일 수 있고, 마음은 스스로 묘법을 이해하게 될 것일세. 그럼으로써 지금까지 얻을 수 없는 것과, 또 지금까지 깨닫지 못하던 오묘한 이치와, 한 가지는 깨달았지만 그 나머지 두세 가지 깨닫지 못한 것과, 아무것도 모르고 오히려 의혹만 많아지는 것과, 또 환하게 깨달았지만 그 깨달은 까닭은 모르는 것들을 모두 얻을 수 있을 것일세. 그러나 이런 것을 다 얻게 되면 내가 어떻게 거기에 간여할 수 있겠는가? 내가 자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이것뿐일세.”
나는 낚싯대를 받아 물속에 던져 넣으면서 스스로 한탄하였다.
“참으로 그대의 말이 훌륭하다. 이러한 방법을 가지고 미루어 이용한다면 그것이 어찌 낚시 놓는 데만 응용되겠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을 깨우칠 수 있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를 두고 한 말 아닌가?”
- 남구만, 「조설(釣設)」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한다. 갑작스러운 게 아니다. 일요일이면 새롭게 시작되는 한 주의 시간들을 미리 생각한다. 보통 그 달의 계획 안에서 이뤄지는 생각들이다. 그리고 그 생각들 역시 한 해의 목표나 계획이 이미 거느리고 있던 것들이다. 한 해의 목표와 계획들은 거의 비슷하다.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단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지금껏 공부해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그저 고기가 잡히기만을 기다리던 때도 있었다. 우연히 미끼를 문 물고기들이 있어 내가 낚시의 묘리를 깨달은 게 아닐까, 자만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물가 근처에 살았을 뿐이며 그런 대로 쓸 수 있는 낚싯대를 가지고 있던 것뿐이었다.
미끼를 비늘에 끼우고 낚싯대를 크게 휘어 물을 향해 던질 줄 아는 것이 나만이 갖고 있는 특별함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나에 대해 과대평가를 할 때, 그러니까 내가 내 일에 대해 자만하게 될 때 공부를 놓게 된다. 시늉만 하는 것이다. 공부는 시늉으로 그 성취를 절대 얻을 수 없다. 하루종일 낚시터에 앉아 빈 낚싯대를 드리우고 다시 걷어올리는 걸 반복한다고 해서 물고기가 잡히는 것은 아니다. 간혹 물고기를 낚기 위한 게 아니라 세월을 낚기 위함이었다고 자위하는 경우도 있다. 자기기만이다. 공부는 세월(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그 세월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말은 킬링타임용 영화, 킬링타임용 드라마… 따위이다. 대체 그 시간들을 왜 죽여야 하는 것인지.)
자신이 스스로를 속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 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불평불만이다. 똑같은 물에서 왜 저 사람에게만 고기가 잡히는 거지? 고기는 '잡히는'게 아니라 '잡는' 것이다. 낚시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불평과 불만은 질투로 이어지지만 그 또한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 질투를 '질투의 힘'으로 옮기기 위한 정신의 과정이 필요하다. 침잠과 처절한 자기반성이다. 그러고 다시 일어나 정신을 집중하여 열흘이고 한 달이고 그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자신만의 방법.
지금까지 얻을 수 없는 것, 지금까지 깨닫지 못하던 오묘한 이치, 한 가지만을 깨닫고 그 나머지 두세 가지는 깨닫지 못한 것, 의혹만 많아지는 것, 환하게 깨달았지만 그 깨달은 까닭은 모르는 것들을 일 년이고 이 년이고 평생이고 찾아가는 것이다. 그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부이고 그 일부의 계획이 어젯밤 잠들기 전 했던 생각이고, 그 일부의 실행이 이 새벽에 하고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