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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감자 Mar 25. 2022

백수 아빠랑 놀아주겠니?

가장의 무게를 아내에게 가볍게 토스! ep.8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학창 시절에도 축구나 농구를 자주 하고 재밌게 했지만 생각해보면 그리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다. 대학교 때 시작한 스노우보드는 재밌게 타러 다녔지만, 몇 년 전 잠깐 배웠던 주짓수는 또 그리 흥미가 가진 않았는데 지금 하고 있는 테니스는 정말 너무 재밌게 치고 있다. 이걸 왜 이제 시작했을까 한스럽고 허리가 아파 자주 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 안타까울 정도이다. 무슨 차이로 운동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료나 상대편과 자주 부딪혀야 하는 운동을 선호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덩치 큰 녀석이 달려들면 부딪힐까 너무 무섭고, 땀에 젖은 피부들이 맞닿는 것도 나에게는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멀리 떨어져서 상대방과 공을 주고받는 테니스는 나에게 100% 적합한 운동이 아닐 수가 없다. 넓은 테니스코트 한쪽에서 혼자 서있는 것도 너무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


하지만 테니스는 확실히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은 아닌 것 같다. 한 달 동안 20~30분 정도 레슨을 8회 하면서 강습료가 보통 20만 원 중반 대이니 싸게 배울 수 있는 운동도 아닐뿐더러, 개인차가 있지만 제대로 된 스트로크를 하려면 2~3달 정도, 야외 코트에서 랠리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1년은 족히 걸리니 쉽게 배울 수 있는 운동도 아니다. 최근 코로나에 비교적 안전한 운동으로 테니스가 주목받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테니스 붐이 일어나고 있는데, 나는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 레슨을 시작해서 문제없이 원하는 시간에 등록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원하는 시간에 레슨 받으려면 예약을 걸어둬야 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치솟고 있다.


남녀를 불문하고 깔끔하고 멋스러운 테니스룩을 SNS에 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대중들이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테니스 붐의 한몫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덕분에 테니스장을 예약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근처 테니스장마다 예약 오픈 시간 알람을 맞춰놓고 시간 맞춰 들어가도 성공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대학교 때 수강신청보다 더 어려운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실내테니스 연습장이 수도 없이 생겨나고 있는 걸 보면 이제 좀 더 대중적인 스포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권순우 선수의 활약도 스포츠뉴스에서 그다지 다뤄주지도 않고, 유명한 시합도 쉽사리 중계해주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한 것도 사실이다. 아니, 사실은 마음 한 편으로는 테니스가 아는 사람만 즐기는 스포츠여도 좋겠다는 이중적인 마음도 가지고 있다. 이 마음은 마치 대중들이 몰라주던 혁오밴드나 잔나비 같은 밴드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내 마음속 팬심의 열정이 이전보다 식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내가 테니스를 시작한 것은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테니스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못했고 그저 귀족 스포츠이며 언젠간 해보고 싶은 동경의 스포츠 정도로만 여겼는데 2년 전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집 근처의 실내테니스 연습장에 덜컥 등록을 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혼자 가지 않고, 아들을 함께 데리고 다니며 같은 시간에 각각 다른 코치님에게 레슨을 받기로 했다. 마침 아들에게 어릴 때 미리 특기를 하나 심어주고 싶었는데 아들의 키 크고 마른 체형과 체격이 어릴 적의 나와 너무 같아 아들에게도 테니스가 제격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아들도 테니스를 재밌어하고 또 아빠와 함께 배우면서 같이 실력이 늘어가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지금은 실내테니스장은 그만두고 올림픽공원 테니스장에서 그룹레슨을 시키고 있는데 또래들과 경쟁하면서 더욱 재미를 느꼈는지 이제는 테니스 선수를 꿈꾸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백수아빠가 무슨 능력으로 적지 않은 그룹 레슨비를 내어가면서 테니스를 가르치냐고 할 수도 있지만, 평일에 시간이 많은 백수아빠이기에 매번 올림픽공원까지 데려다주고 데려올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계속 일을 하고 있다면 도무지 그룹레슨을 시켜줄 수 있는 시간이 나질 않아 아들에게 테니스는 좋아하는 취미 중에 하나로만 그쳤을 것이고 테니스 선수라는 명확한 꿈을 가진 아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직업을 잃고 그 덕에 아들은 꿈을 얻었다.



사실 아들과 같이 테니스를 치는 이유는 아들에게 특기를 심어주는 목적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아들에게 경쟁심과 끈기, 노력, 성취감 같은 것들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주고 싶었다. 워낙 이 아빠라는 사람이 노력보다는 포기의 정당함을 찾거나, 부딪히기보다는 양보를,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인드라 내 아들만은 이런 성격을 닮질 않기를 바랐다. 선수들처럼 힘든 훈련도 경험시키면서 끈기를 가르치고 싶었고, 승패의 짜릿함과 분함, 노력의 대가 같은 것을 어릴 때 알게 해주고 싶었다. 테니스 선수를 꿈꾸는 아들이지만 꼭 선수로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거니와 상황에 따라 중간에 그만두게 될 가능성도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비록 중간에 그만두게 되더라도 테니스를 통해 이러한 성격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동안 투여한 시간들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는, 아들에게 아빠는 무언가를 가르쳐주거나 시켜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함께 놀고, 함께 성장하는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조금 더 커서도 '우리 아빠는 뭐든지 잘해!'보다는 '우리 아빠는 뭐든지 함께 해!'라고 자랑했으면 좋겠다. 뭐든 잘하는 아빠가 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뭐든 잘하기가 쉽진 않으니깐. 나에겐 '자식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은 아빠의 기준이다. 이런 생각이 깊게 자리 잡혀 있어 뭐든지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한다. 산책이나 운동을 할 때에도 꼭 귀찮아하는 아내를 끌고서라도 데리고 가며, 주말에는 거의 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아이들과 지내려고 한다. 원래 워낙 친구가 적어 가족들에게 더욱 집착하는 부분도 존재하긴 한다만 어쨌든 가족이 항상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벼운 운동이나 게임도 같이 놀며 같이 즐겨주면 아이들은 사소한 이야기들도 곧잘 아빠에게 이야기하게 된다. 브롤스타즈같은 온라인 게임도 같이 즐기고, 운동도 같이 하고, 공부도 가르쳐주고, 책도 같이 읽으면서 같은 수준의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나름 재밌는 맛도 있다. 심지어 아들에게 몇 년 뒤에 둘이서 배낭가방과 테니스 라켓 달랑 매고 세계여행을 하기로 약속도 하고 미리 코스도 정해보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 본 적도 있다. 난 진지했는데 아들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얼마 전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아빠, 난 세계여행은 무리일 거 같아.
사촌 형도 못 만나고 엄마랑도 떨어져 있어야 하잖아.
아빠 혼자 다녀와.



아들에게 테니스 선수가 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어린 아들은 나의 기대에 맞춰 본인 스스로 세뇌되어 테니스가 재밌다고 생각하고 당연히 테니스 선수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 강요할 생각은 없다. 원한다면 테니스 말고도 더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다. 오히려 "아빠, 나 테니스 선수 안 할래. 공부가 더 재밌어." 이런 말을 더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 주인공 가족이 다같이 엉망진창으로 테니스를 치는 장면이 잠깐 나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나중에 꼭 하고 싶은 것 중 하나이다. 아내와 아들과 딸, 우리 가족이 다같이 테니스 치는 모습을 상상하면 벌써 행복해진다. 이미 어린 딸 빼고 셋이서는 같이 치고 있으니 절반은 꿈을 이룬 셈이다.


아들에게 테니스 선수가 되라고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강요하진 않겠지만, 마침 "킹 리쳐드"라는 영화가 개봉한다. 여자 테니스계의 살아있는 전설, 윌리엄스 자매의 성공 스토리라 이번 주말에 꼭 데리고 가서 보여주려고 한다.


강요하진 않겠지만, 레슨 없는 날에는 아빠랑 기초체력 훈련하고 랠리 연습하자.


강요하진 않겠지만, 자기 전에 스윙 연습은 빼먹지 말자.


아아, 아빠의 욕심은, 부모의 욕심은 끝이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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