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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감자 Mar 16. 2022

백수도 고민이 많다.

가장의 무게를 아내에게 가볍게 토스! ep.7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백수의 이미지는 파란색 아디다스 운동복 바지와 삼선 슬리퍼를 입고,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을 하고 고민거리 하나 없는 바보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오늘 하루 먹을 것에 대한 고민밖에 없고, 사회에 대한 불만만 가득한 그런 이미지 아닌가?


차라리 나도 그런 속 편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만, 심신이 미약한 나는 사실 하루하루를 걱정과 고민 속에 살아가고 있다. 아아, 수염은 나도 기르고 있으니 백수의 조건 중 한 가지는 갖추고 있는 셈이다. 솔직히 몇 달 동안은 걱정과 고민의 압박감이 요즘만큼 강하진 않았다. 몇 달 동안은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방학 동안에는 애들을 봐야 하는 책임이 있었기에 본격적으로(?) 고민을 하진 않았다. 회복과 육아라는 나에게 주어진 임무가 있었으니까. 이제 허리도 점차 회복이 되고 있는 상황이고, 아이들도 학교와 유치원에 가버리니 슬슬 어두운 미래가 엄습해오기 시작한다. 걱정과 한숨과 두려움이 밀려온다.



내 건강에 대한 부분이 큰 문제이기도 하지만, 역시 가장 큰 걱정거리는 경제사정.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통장의 마이너스는 다달이 늘어만 가니 아내의 한숨소리만 들어도 식겁한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파트 전세를 재계약하면서 대출금리가 두 배 가까이 올라버렸다. 그동안은 맞벌이 었기에 적지 않은 대출이자가 큰 부담은 아니었지만 이제 사정이 다르다.


사실 아들에게 어릴 때 특기 하나라도 만들어 주고 싶어 2년 전부터 테니스를 배우게 했었는데 아들놈이 테니스가 적성에 맞는지 테니스 선수를 꿈꾸는 지경에 이르렀다. 레슨비가 부담이 돼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차마 테니스까지 중단시킬 수 없어 결국 테니스 레슨은 유지하고 그 외에 모든 학원을 끊어버리고 집에서 직접 가르치기에 이르렀다. 똘똘한 아들을 아빠가 망치는 거 같아 마음이 찢어지지만, 대신 집에서 남들 부럽지 않은 교육을 시켜 주기로 마음의 약속을 했다.


아들의 교육비를 줄임과 동시에 외식비도 줄여야 할 것이며, 그 외에 줄일 수 있는 것들은 죄다 줄여야 한다.


돈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요즘, 고등학교 때 친구와 아무 생각 없이 불렀던 정체불명의 노래가 생각난다.


돈 돈 돈 돈 돈이 웬수다.
돈 돈 돈 돈 돈 때문이다.
득 될 거 하나 없다. 도깨비 종이.
술 술 술 술 술이 웬수다.
술 술 술 술 술 때문이다.
득 될 거 하나 없다. 도깨비 국물.



이 한량 같은 노래의 정체를 아시는 분?



또 하나의 걱정거리는 앞으로의 문제.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자리 잡고 있던 사업을 동업하던 친구에게 죄다 넘기고 대책 없이 백수가 되어버렸으니, 앞으로 무얼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나. 하는 고민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하고 싶은 아이템들이 꽤 있는데 어떤 것은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어떤 것은 준비기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어떤 것은 내 능력 밖이고.. 다 빼보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이렇게 끊임없는 걱정을 하다 보면 결국 냉장고 안에 맥주를 안 꺼낼 수가 없다. 나를 위로해주는 유일한 것, 맥주. 맥주를 실컷 마셔서 걱정이 줄어든다면 얼마든지 마셔주겠는데 불행히도 걱정이 해소되진 않는다.

기분 좋을 때는 술을 마시고, 피로가 쌓이면 자양강장제를 마시고, 운동하다가 목이 마를 때는 이온음료를 마시고, 술 깨려고 숙취 해소 음료도 마시는데, 걱정거리가 많을 때 마시는 음료는 없나? 걱정 해소 음료라는 것을 개발해보는 건 어떨까? 사업 아이템이 하나 더 늘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다면 걱정이 없겠네.


홍선화 님의 '고통의 쓸모'라는 책을 보다가 이런 구절이 내 마음을 건드렸다.

결국 걱정하면서 살 필요 없다는 이야긴데,

내가 걱정을 하지 않아서 아내가 걱정이 늘어나는 것보다,

내가 걱정을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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