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감자 Mar 08. 2022

외로움을 즐긴다고?

가장의 무게를 아내에게 가볍게 토스! ep.5


항상 내 소원은 원 없이 외로움을 타보는 것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맘껏 즐기고 싶었다. 그렇다고 혼자 있는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만화책을 보던가, 누워서 멍 때리거나, 포털사이트 '다음'을 뉴스부터 구석구석 정보까지 샅샅이 살피던가, 영화를 보던가 하면 하루는 순식간에 흘러간다. 혼자 있을 때의 식사는 무조건 피자나 햄버거다. 치킨은 왠지 혼자 먹기가 싫다.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하루를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좋았다. 친구 만날 시간에 집에서 빈둥거리기를 좋아하는 나였으며, 사랑하는 애인과도 주말 내내 만나기보다는 하루 정도는 집에 있을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할 정도였다.


이런 성격 덕분에 친구가 많지 않다. 먼저 연락 오지 않는 한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오랜만에 약속이 잡혀도 은근히 취소가 되지는 않으려나 이상한 기대를 한다. 막상 약속 자리에 나가면 혼자 젤 신나면서. 심지어 이런 성격 때문에 파투도 은근히 자주 내는 못난 사람이다. 그럼에도 가끔씩 전화 주는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일과 관련된 전화가 평일 주말을 막론하고 수도 없이 왔다. 하루라도 전화기를 꺼놓고 살아보는 게 소원일 정도였다. 휴대폰 벨소리 노이로제가 생겨서 내 휴대폰은 언제나 진동이었다. 전화를 못 받는 건 또 용납이 안돼서 집안에서도 항상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비효율적인 행동을 한다. 애플 워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는 하나라도 덜 걸치고 싶어서 사용을 안 하니 정말 비효율적이다. 외롭고 싶지만 연방 울려대는 전화 때문에 외로울 틈이 없다. 아 혼자이고 싶다.


아아 나는 외로움을 즐기는 남자다. 고독한 남자. 외로움의 멋을 아는 남자. 외로움을 즐길  아는 남자. 밖으로는 밝아 보이지만 내면의 어딘가에는 어두움을 간직한 신비로운 존재. 위대한 개츠비에 나올  같은 시끌벅적한 파티장에서 혼자 발코니로 나와 마티니  잔을 고독이라는 안주와 함께 마실  아는 그런 남자. 그게 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분명히 언제나 혼자 있기를 원하고, 여럿이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가 훨씬 마음이 편했다.


허리 때문에 안방 침대에서 몇 달째 누워있기 전까지는..



너무 외롭다!!
누가 나랑 얘기 좀 해줘!!


그렇게 갈망해왔던 나 혼자만의 시간이 몇 달이 되니 죽을 맛이다. 집돌이가 진짜 집에만 있어보면 정신을 차린다는 얘기가 내 이야기였다. 지독한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멋있는 게 아니었다. 외로움은 외로운 것이었다. 가끔가다 연락 오던 친구들의 전화는 유독 횟수가 줄어든 것 같고, 일을 놓으면서 관련 전화도 도통 울리질 않는다. 더 이상 집에서 휴대폰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울리질 않으니까. 대신 벨소리를 크게 켜놓는다. 어차피 울리질 않을 테니.


나 하나 따위 사회에서 살짝 빠져있어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구나. 고독사가 남의 일이 아니겠구나. 왠지 서글퍼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인간관계를 좀 더 촘촘히 맺어놓을 걸 그랬다. 후회가 된다. 먼저 안부전화도 하고 인맥관리도 하고 그랬어야 하는데 내가 뭐가 잘났다고 먼저 다가오길 바랬단 말이냐. 난 틀려먹었다.


휴대폰의 즐겨찾기에서 더 이상 즐겨 찾을 일이 없는 사람들을 지우고 나니 두 명이 남았다.

첫 줄, 아내.

둘째 줄, 아들.


아직 7살의 둘째 딸에게 당장이라도 키즈폰을 사줘야 할 판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아내가 외근 나가는 길에 전화를 주면 그게 너무 반갑다. 집에 혼자 있으면 우울해지고 그러다 보면 이상한 생각도 들 수도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번 기회에 푹 쉬면서 몸 관리하라고. 평소 못 보던 책도 보고, 하고 싶어 하던 공부도 하라고. 밥은 잘 챙겨 먹으라고.


오후  시가 되면 학교에 가있는 첫째 아들한테 전화가 온다. 이제 집으로 출발한다고. 아니면 친구랑 조금만 놀다 들어가도 되냐고. 용건만 묻고 끊으려고 하는 아들에게 나는 신이 나서 오늘 학교는 어땠냐? 무슨 재밌는  없었냐? 누구랑 놀다  거냐? 빨리 와라.  최대한 통화를 길게 이어간다.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아들의 목소리는 특히나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렇다. 나에겐 아내가 있고, 첫째 아들이 있고 둘째 딸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나에겐 아내와 아들 딸 밖에 없다. 최근 가지고 있던 많은 것들을 잃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지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었다. 가족 말이다. 오로지 아내와 자녀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매우 소중하다고 느껴진다. 지금 나의 상황이 꽤나 험난하고 괴롭지만, 나의 가족에게 받는 '전화 한 통화'(라 쓰고 사랑이라 읽는다.)로 인해 지독한 외로움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용기와 힘을 얻는다.  


외로움을 즐긴다고? 그 역할은 고담시에 사는 브루스 웨인 님께 넘기겠다.




이전 05화 백수의 하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