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아버지의 무한 사랑에 감사하며...
임용의 긴 시간을 어찌어찌 견뎌내고, 될 수 있으면 후회하지 않으려 했다.
후회한들 시간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후회하는 시간보다 내가 지금 당장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쉬운 부분이 있다.
나의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무거운 아쉬움이 있다.
2남 2녀의 늦둥이 막내아들과 결혼했다.
나의 결혼조건은 딱 하나였다.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한 남자'
이것 딱 하나였다.
나는 그랬다.
엄마와 동생들과의 관계는 좋았지만 생활력이 조금 부족한 아빠는 결혼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분이셨다.
모든 일에 아빠 본인이 우선이셨고, 가족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더 우선이었다.
나는 그러한 부분이 어릴 때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아빠의 사랑이 부족해서인지
'결혼하면 꼭 시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고 싶다'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생각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어머님 아버님을 우연히 마주하게 된 첫날.
나는 이 분들과 가족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던 거 같다.
공식적으로 인사를 드리러 간 날,
놀랍게도 내가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그렇게 내가 꿈꾸던 '화목한 가정'의 가족이 되었다.
2남 2녀의 늦둥이 막내아들과 결혼해서 막내며느리가 되었다.
아버님은 나를 애지중지 아껴주셨고, 우리 딸을 정말 많이 사랑해 주셨다.
결혼을 하고 같은 해 말에 출산을 하고 바로 임용을 시작했다.
주말이면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고, 남편은 어린 딸을 데리고 아버님댁으로 향했다.
손녀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셨단다.
그래서 우리 딸은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참으로 많다.
그 사랑을 온전히 느끼는지 중학생이 되는 딸아이는 지금까지도 할아버지의 사랑을 온전히 느낀다.
매년 가족여행이 있을 때면 밤도깨비처럼 도서관 끝나고 합류해서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버님은 내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셨고,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한다며 안쓰러워하셨다.
어느 날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아가. 공부 그만해도 괜찮아. 우리 며느리 여행도 맘 편히 못하고. 우리 재밌게 오래오래 놀자"
그 말이 참으로 잊혀지지 않는다.
아버님은 나와의 시간을 원하셨는데,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나를 위해서 공부만 했던 것 같다.
공부하는 며느리 밥 굶지 말라고 수시로 용돈을 챙겨주셨다.
매년 불합격하는 며느리 어디가 예쁘다고 불합격할수록 더 기죽지 말고 잘 챙겨 먹으라고 두둑이 용돈을 넣어주셨다. 합격여부가 궁금하셨을 텐데도 한 번을 먼저 물어보지 않으셨다.
그렇게 아버님은 나를 배려하고 온통 내 생각만 해 주셨는데, 아버님은 내가 임용고사를 준비하던 어느 해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중환자실에 갈 때면 아버님 손을 꼭 잡고,
"아버님 제가 꼭 합격할 테니, 조그만 힘을 내주세요. 꼭 합격할게요."
라고 기도했지만 아버님은 기다려주시지 않았다.
아니다. 내가 너무 오래 아버님을 기다리게 했다.
공부만 했던 며느리는 아버님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합격증도 드리지 못하고 아버님을 보내드렸다.
임용의 시간 중 그 어느 때 보다 아버님이 안계시게 되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합격증을 드리지 못했다는 마음에 정말 마음이 무겁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야속했다.
임용을 그만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힘들어하는 나에게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OO엄마야. (OO 이는 우리 딸)
너무 슬퍼하지 마렴. 아버지는 너도 알다시피 우리 막내며느리를 정말 사랑하셨어.
우리 집에 가방 끈 긴 며느리 들어온다고 엄청 좋아하셨어.
선생님 될 아이라고 나 보고 막내며느리는 아무것도 시키지 말라고 하셨지.
너도 알지? 아버지가 너 많이 사랑한 거?
부담 갖으라고 하는 말 아니다.
네가 우리 아들하고 결혼해 줘서 고맙다. 아버지는 그걸로 충분해.
그리고 OO이 있잖아. 아버지가 OO 이를 얼마나 예뻐하셨니.
네가 공부한 덕분에 OO이가 매주 우리 집에 왔잖니. 아버지는 매주 OO이 오기만을 기다리셨어.
그게 아버지의 가장 큰 낙이셨어. 그거면 됐다. 네가 속상해할 일 아니야.
너는 네 할 일을 충분히 했어. 아버지도 너 덕분에 행복하게 있다 가셨다.
너무 마음 쓰지 말고, 공부하고 싶음 공부 더 하고, 그만하고 싶음 그만해도 된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가방끈 긴 게 뭐라고... 가방끈만 길어서 공부를 너무 오래 했다.
아버님은 나와의 시간을 보내고 싶으셨는데, 내 욕심에 너무 오래 공부만 했다.
그렇게 가방끈만 길었던 며느리는 아버님의 사랑만 받고 아버님께 그 사랑을 돌려드리지 못했다.
임용을 후회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아버님과의 시간을 온전히, 충분히 보내지 못한 부분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서 임용을 정리한 가방끈 긴 며느리는 오늘,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려 노력한다.
나는 어리석게도 유한의 시간을 살면서 무한의 시간을 살 것처럼 모든 것을 합격 후로 미뤄버린 무책임한 사람이었다.
그것을 너무나 늦게 깨달았다.
이제는 '다음으로, 어떤 것을 한 다음에'로 미루지 않는다.
아버님과의 시간은 충분히 보내지 못했지만 다른 가족들과의 시간을 혹여나 놓칠까 봐 지금을,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가족들과의 시간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기에 지금, 현재를 열심히 살아간다. 하늘에서 보고 계실 아버님께 죄송하고 부끄럽지 않게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