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자리를 찾고 있다.
아이를 낳고 바로 임용고사를 시작했다.
11월에 아이를 출산하고,
바로 다음 해 1월부터 노량진 학원 수업을 수강했다.
임신 중에 임용 관련 서적을 뒤적뒤적했지만
아직 여유가 있다는 생각에 집중해서 보지 않았다.
특별한 전략은 없었다.
이때 특별한 전략을 세웠어야 했는데,
나는 거북이처럼 열심히만 하면 합격할 줄 알았다.
그렇게 2013년 1월부터 시작된 나의 임고 인생이
2021년이 되어서야 마무리될지 이때는 몰랐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우리 딸은 친정엄마가 전적으로 돌봐주셨다.
평일에는 친정엄마가 온전히 아이를 봐주셨고,
주말에는 남편이 전적으로 아이를 돌보았다.
아이 기저귀 한 번을 마음 편히 갈아준 적이 없고,
아이 분유 한 번으로 제대로 먹이지 못한
정말 부족한 엄마였다.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 아이는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에 갔다.
엄마는 여전히 임용고사 불합격생.
엄마의 자리는 그렇게 계속 비어있었다.
갓난아이 었을 때는 엄마의 빈자리가 그리 크지 않았다.
잠자는 아이 보면서 나갔다가 아이 잠잘 때 들어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이가 점점 크면서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진짜 눈물이 난다.
"엄마, 나랑 놀면 안 돼?"
"엄마, 도서관 가지 말고 나랑 놀자."
"엄마하고 놀고 싶어."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어느 날은 늦게까지 잠을 청하지 않는 딸에게 큰소리를 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미친년이지...
아이는 나와 놀고 싶어서 그랬을 텐데~
엄마인 내가 아이 마음을 그렇게 몰랐다니...
엄마의 빈자리는 주변 가족들 덕분에 잘 채워져 갔다.
엄마만 합격했으면 되었는데,
엄마는 결국 임용고시를 합격하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엄마 자리로 돌아가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건 정말 단순한 나의 착각이었다.
십 년 동안 우리 딸에게 없었던 엄마 자리에 어찌 내가 쏙 들어가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임용을 정리하고 아이와 생활을 하는데,
아이는 나와의 생활을 불편해했다.
나와의 모든 것이 불편하고 불만이었다.
그동안 엄마 없이도 잘 돌아갔던 것들이 문제였다.
아니지~엄마가 임용공부를 핑계로 엄마 역할을 안했던것이 문제였다.
딸은 아빠와 지내는 것이,
할머니와 지내는 것이 이제 편해졌다.
엄마와 있으면 모든 것이 불편했다.
내 입장에서는 딸과 이제 시간을 많이 보내고자
주말만 되면 이곳저곳 아이와 함께 하려 했지만...
딸은 항상 말한다.
"아빠도 가지?"
"할머니도 함께 가는 거지?"
아빠나 할머니가 함께하지 않으면 엄마와 둘은 불편하다며 함께 하지를 않았다.
그렇게 나와하는 모든 것에 불편하고 화가 나 있었다.
임용을 이제 정리했으니
엄마 자리로 돌아가서 아이와 즐겁게 지내는 시간만을 꿈꿨는데~
그건 정말 나의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아이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이었다.
십 년간 엄마가 없었는데, 갑자기 엄마라고 나타나서
이것저것을 함께하자 하니,
아무리 좋고 재밌는 것을 해도 불편하고 싫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이에게 집중한다.
아이가 화내도 일단 참고, 불편하다 해도 일단 참는다.
절대 시간을 채워야 함을 알기에 일단 꾹~~ 참았다.
어떤 때는 내가 깍두기가 된 느낌이었다.
어느 곳을 갔더니
"아빠. 여기 진짜 좋지? 나 다섯 살 때 왔었는데. 아빠 기억나?"
"할머니, 여기 저번에 아빠랑 우리 같이 왔잖아요. 여기 정말 좋죠."
나는 함께 하지 못해서 기억도 나지 않는 장소에서
나는 모르는 대화를 듣는데, 깍두기 같았다.
아이가 일부러 말하는 것도 아닐 텐데 서운했지만 일단 그렇게 꾹 참으면서 견뎌냈다.
그렇게 아이와의 절대 시간을 채운 후에 나는 결심을 한다.
아이와 단 둘이 여행을 하기로~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겨울 방학에 아이와 함께 싱가포르 여행을 계획했다.
국내 여행보다는 온전히 우리 둘만 있을수 있는, 그리고 안전한 나라를 고려하여 선택한 곳이었다.
가기 전부터 아이는 난리도 아니었다.
"아빠 안 가면 나 안가."
"아빠도 가자."
하지만 그 상황을 온전히 이겨내고 아이와 둘이 떠난 여행은 성공이었다.
우리 둘의 이야기에만 집중했고, 매일매일 아이와 그날 계획을 머리를 맞대고 세운다.
서로에게 모두 낯선 곳을 함께 걸으면서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니 아이 손이 자연스럽게 나에게 온다.
우리 딸, 아빠 손은 잡아도
엄마 손은 너무 부드럽다며 안 잡았던 아이다.
우리 딸이 쓱~ 손을 내밀었던 날을 잊을 수 없다.
혼자 뒤돌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엄마와 단 둘이 떠난 여행이 너무 좋았다며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우리 조만간 싱가포르 또 오자고 약속했다.
그 아이가 이제 더 자라서 중학생이 된다.
더욱이 발레를 전공하게 되면서 엄마 손이 더 필요하게 된 우리 딸은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너무 좋단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이렇게 엄마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엄마 없는 십 년 동안 잘 자라준 아이에게 감사하며, 지금부터는 진짜 엄마 역할을 톡톡히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참고)발레를 전공하는 딸과의 일상도 많이 기대해 주세요. 곧 글로 남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