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건지, 살아지는 건지
그저께부터 어금니 쪽이 살살 아프다. 혀로 살살 굴려 입 안에 아픈 곳을 찾아본다. 사랑니가 나려는 것 같다. 약간의 미열과 몸살 기운이 있다. 이불 안을 벗어나기가 너무 힘들다.
‘정말 일어나기 싫다’
이불속에서 유튜브를 켰다. 추천 영상들을 내려보다가 썸네일부터 강렬한 동기부여 영상들이 눈에 띈다. 이런 영상들은 좋아요만 눌러놓고 안 보게 된 지 꽤 됐다. 계속 너는 할 수 있다는 식의 채찍질에는 신물이 난다. 썸네일에 다시 한번 힘을 내라는 말이 적혀있다.
‘그냥 힘이 들 때는 힘을 빼야 또다시 떠오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하고 속으로 반박해본다.
몸을 일으키고 이불을 빠져나왔다. 이불 밖으로 나오기는 성공했다. 바로 이를 닦는다. 치약의 박하향이 잠을 깨운다. 개별포장으로 되어있는 아침 호박죽을 먹는다. 한 개 먹고는 뭔가 아쉬워 두 개를 먹었다. 세수를 하고 이제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몸에 기운도 없고, 입을 옷도 없다.
‘옷장이 잘 닫히지도 않는데, 입을 옷은 한 개도 없네.’
정말 신기한 일인 게 아침마다 옷을 입으려고 하면 입을 옷이 항상 없다. 계절마다 옷을 사도 그때뿐이다. 대충 마음의 결정을 내린다. 이 정도면 체면은 차린 것 같다 싶다. 스킨이 적셔진 솜으로 얼굴의 결을 정리해주고 로션을 바른 뒤 파운데이션 쿠션으로 얼굴을 빠르게 치댄다. 눈썹 쓱쓱 그리고, 아이라인 찍찍 긋고, 입술은 음파 음파.
어렸을 때는 엄마가 화장하는 걸 부러워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커서 하면 더 이쁘다고 했다. 그리고 막상 매일 화장하게 되면 그만큼 귀찮은 일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제는 그 말을 좀 이해한다. 매일처럼 하는 화장은 적잖이 번거로운 절차 중 하나다.
'화장하고 나니 좀 사람 얼굴 같다.'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간다. 매일 똑같은 풍경과 발이 기억하고 있는 길을 빠르게 걸어간다. 아픔이 느껴진다. 뒤꿈치가 쓸린 듯한 느낌이 든다.
‘새로 산 신발 길을 덜 들였나.’
지하철역에 도착하고 시간이 조금 남아서 쓸린 뒤꿈치를 확인했다. 하얀 양말에 피가 잔뜩 묻었다. 아픈 것은 빠르게 지나갔다. 살짝 따끔했을 뿐이다. 나는 새 신발을 신을 때 그 정도 아픔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내 뒤꿈치는 아니었나 보다.
'몸살 기운이 지배해서 신경 쓰지 못했나.'
'어떻게 이렇게 피가 날 때까지 몰랐지?'
편의점에 들러서 양말과 밴드를 샀다. 밴드를 붙이고 양말을 갈아 신었다.
책상에 앉는다.
점심을 먹는다.
커피를 사서 마신다.
하루가 지루하게 흘러간다.
집으로 가는 길이다.
합정역에서 당산역 사이의 다리를 건넌다. 야경이 보인다. 옆에 타고 있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 몸을 꾸겨가며 사진을 찍는다. 그 사람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앞의 야경을 본다. 매일 봐서 무덤덤한 야경을 저렇게까지 사진을 찍을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시니컬한가 싶은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는다.
눈이 내렸다. 지하철로 이동했기 때문에 눈이 이만큼 쌓였는지는 역에서 나와서야 알게 되었다. 소복하게 쌓인 눈 위로 발자국이 어지러이 펼쳐져있다. 길 한쪽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새 눈이 있다.
아이였을 때는 아무도 밟지 않은 새 눈을 좋아했다. 내가 처음으로 밟는 눈은 항상 마음을 들뜨게 했다. 산을 등반하고 그 위에 깃발을 꽂는 것과 같은 기분으로 눈 위에 날아올라 콩하고 발자국을 찍곤 했다. 발자국으로 하트를 만들기도 하고 누워서 천사모양도 만들어보곤 했었는데…
“끼야아!”
하는 함성과 함께 생각에서 깨어났다. 옆에서는 아이들이 눈을 뭉쳐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퍽—
한 아이가 던진 눈덩이에 맞았다. 나의 남색 코트에 하얀 눈이 묻었다. 솜사탕처럼 사그라든다.
“죄송합니다”
하고 아이가 꾸벅 사과한다. 대답을 할 타이밍을 놓쳤다. 괜찮다고 말해줬어야 했는데, 그저 공허한 눈으로 아이를 쳐다보기만 했다. 나의 무표정에 아이는 놀랐는지 우에엥 하고 울며 엄마한테 달려간다.
언제 이렇게 표정만으로
아이한테 겁을 주는 어른이 되었던가.
실은 그렇지 않다고 아이한테 해명하려 했는데, 아이의 엄마가 나를 노려본다. 그 시선을 담아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시선을 내리깔고 집으로 가는 길을 서두른다.
띠띠띠띠—
집에 도착했다. 참아왔던 숨을 휴우 하고 내쉰다. 나만의 안식처. 내가 평가당하지 않을 나만의 공간, 집.
‘다녀왔습니다.’
안녕히 까지는 아니고
오늘도 무사히 살아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안심이 됨과 동시에 하루 동안 까먹었던 사랑니가 다시 아파온다. 정신없이 사느라 아픈 것도 미뤘다. 약을 먹으려는데, 문자가 도착했다.
‘요청하신 대로 문 앞에 주문 건을 보관하였습니다. 분실 우려가 있으니 빠른 수령 부탁드립니다.’
집에 오는 길에 미리 배달을 시켜놓았다.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한 캔 꺼낸다. 아이패드로 넷플릭스를 켜고, 지난주부터 빠져있는 드라마 시리즈를 시청한다.
탁. 치이익—
맥주를 한번 마시고, 치킨을 한입 뜯는다. 보고 있던 에피소드를 마저 보고 뒷정리를 한다. 먹고 나서의 행복한 기분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마치 입안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솜사탕 같이.
샤워를 하고 스킨을 바른다. 자려고 눕는다. 습관처럼 어김없이 유튜브를 켠다. 추천 영상으로 ‘지금 바로 시작 해!’하는 동기부여 영상이 중간중간 보인다.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무시하고 고양이 영상을 튼다.
문득.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려워졌다. 점점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빨리 뛴다. 후우. 깊게 심호흡을 한다.
사랑니가 다시 아파온다. 일어나서 상비약을 먹었다.
다시 누웠다. 눈이 말똥말똥하다.
오늘 일찍 자긴 글렀다.
가끔은 사는 게 뭘까 생각한다. 정해진 시간에 아침에 일어냐야 하는 것도, 밥을 세끼 챙겨 먹어야 하는 것도, 매일 같은 곳에 가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그리고 인생에 이렇다 할 사건이 없다는 것도.
산다는 게 전혀 자극이 되지 않는다.
뭐라도 느끼고 싶다. 그게 기쁨이든 슬픔이든 간에. 그게 사랑이든 고통이든 간에.
불쑥 사랑니가 아파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라도 느낄 수 있으니까.
눈을 감았다가 뜬다.
똑같은 천장.
똑같은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