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 두고 가주세요
윗배가 살살 아파와서 한의원에 갔다. 한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대로 환자용 침대에 눕는다. 선생님께서 배를 꾹꾹 눌러보신다. 끄악 하고 비명이 나온다. 선생님께서 윗배가 나왔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혼밥을 자주 하냐고 물어보셨다.
'네. 자주 하는 편입니다.'
- '혼밥을 자주 하면 몸에 안 좋아요. 혼밥 하면서 핸드폰으로 영상 시청을 하나요?'
'네. 매번 보면서 먹는 편이죠.'
- '먹으면서 다른 것에 집중을 하면 뇌가 먹는 것을 백 퍼센트는 인식하지 못한 채로 음식물이 들어가기 때문에 평소에 먹는 양보다 과식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요즘에는 혼밥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아랫배보다 윗배가 나온 분들이 더러 있더라고요.'
'아 정말요?'
- '밥을 먹을 때는 앞에 마주 않은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혼밥을 하더라도 핸드폰 대신에 창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먹는 게 좋아요. 천천히 꼭꼭 씹어가며 시간을 들여서 밥을 드세요.'
'알겠습니다. 노력해볼게요.'
혼자 밥 먹는 시간이 늘었다. 혼밥이 유행이 된지는 오래되었다. 식당에 가면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을 위한 전용 자리가 있기도 하기에 혼자 먹는다는 게 그다지 이상할 것은 없다.
혼자 밥을 먹는 이유는 시간 절약을 위해서 기도 하고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랑 불편한 대화를 이어나가며 밥을 먹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밖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면 핸드폰으로 영상을 본다. 먹방을 보거나 아니면 넷플릭스를 본다.
아니면 가끔씩은 창가 자리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가끔씩 눈을 마주치면 괜히 민망해져서 급하게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그런 민망함이 싫기에 핸드폰을 보는 척 하는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보는 것과 먹는 것에 동시에 집중을 하기가 힘들기도 하다. 그렇다고 한들 영상을 보고 먹는 게 습관이 돼버려서 아무것도 안 보고 먹으라고 하면 뭔가 심심하다.
똑같은 하루가 지나간다.
육교를 건너서 노을이 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가을이 단풍을 입었다. 모든 색이 어우러진 노을을 뒷배경으로 혼자 있는 남산타워가 쓸쓸해 보인다. 왠지 나와 같은 처지인 것 같아서 사진을 찍어본다.
플리스를 입기 좋은 날씨다. 나뭇잎들도 옷을 갈아입었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옷깃 속에 얼굴을 묻는다.
발이 아는 길. 익숙하게 계단을 내려간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겉옷을 벗는다.
몸이 부르르 떨린다.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가 전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오늘 저녁도 혼자서 먹는 밥이다.
책상이 밥상이고 밥상이 책상이다. 익숙하게 노트북 각도 조절해놓고 음식을 세팅해놓는다.
준비 완료
영상에서 캐릭터들이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뻘하게 터져서 음식을 입에 넣고 웃어버렸다.
조용한 공간에 울리는 웃음소리.
뭔가 민망해져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웃음소리가 바람 빠진 풍선 같다.
음식을 정리하다가 충전기 콘센트에 발이 밟혔다.
짜릿한 고통.
혈액순환 빡.
그러다가 서비스로 왔던 국물을 책상에 철퍼덕 흘려버렸다. 참 빠르게도 여기저기 스며든다.
한숨 소리.
닦으려는데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던 물건들이 다 적셔진 느낌이다. 냄새도 짜증 나고, 닦아도 끝이 없는 것도 짜증 나고, 아직 책상에 치워야 되는 배달음식이 남아있는 것도 짜증 난다.
일단 대충 닦아놓는다.
그러다가 노트에 국이 스며든 것을 발견했다.
아 정말.
휴지를 노트에 끼워놓다가 텀블러를 쳤다.
내 노트북.
겉에 묻은 물을 닦고 뒤집어놓고 말린다. 시간이 지나고 다 말렸다는 생각에 노트북 전원을 한번 켜본다.
켜지지 않는다.
하. 오늘 진짜 혼자 밥 먹기 싫더라니.
일진이 사납다.
원래는 평화로운 혼밥 시간이어야 했는데, 사고는 이미 벌어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속상한 마음을 어디다가 털어놓고 싶은데 문득, 한의사 선생님께서 혼자서 밥 그만 먹으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혼밥은 그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어져 온 습관일 뿐이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 난.
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라고 생각해.
아무렇지 않은지는 꽤 된 거 같아.
대화를 나눈다는 게 굳이 필요해?
내가 너의 시시콜콜하고 잡다한 얘기까지
알아야 해?
별로 관심도 없고
앞으로도 관심이 없을 예정이니
나한테 관심 꺼줬으면 좋겠어.
서로 아는 듯 모르는 듯 그렇게 살자.
그래 그냥 그런 거지. 뭐. 산다는 게.
불필요한 감정의 교환.
그냥 두고 가세요.
볼지 안 볼지는 모르겠지만.
배송 메시지 칸에는 메시지가 항상 고정되어 있다.
문 앞에 두고 가주세요.
띵동-- 배달 도착 문자가 날아왔다.
문을 열고 아무도 없는지를 살핀다.
음식 봉투를 챙긴다.
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