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팔이

나르시시스트

by 선우

있잖아.

A랑 B랑 사귄다는데, C가 B를 가로챘다고 하던데?

진짜 여우 아냐?


있잖아.

이번에 ㄱ이랑 얘기하는데 걔가 너무 감정적이더라. 나 그런 거 진짜 싫어.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있잖아.

나 새로 옷 샀는데,

나랑 어울리게 우아하지? 이쁘지 않아? 나는 누군가가 칭찬을 해줘야

더 일을 잘하는 타입이야.



다른 사람의 관심과 너무 많은 인정이 필요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들은 자기를 이뻐해 달라고 매번 보챈다. 이 세상이 자기만을 위해 돌아가는 양 행동한다. 언제나 자기가 주인공을 차지해야만 하는 그 사람들의 심리란 파고들어 갈수록 피곤하다. 그런 사람들은 멀리 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그 사람들의 사고 속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일은 사람들한테 라벨을 붙이는 일이다. 일단 1차원적인 사고를 먼저 한다. 단순하게 좋고 싫고로 사람을 판단하곤 하는 이런 유치한 사고의 사람들은 나에게 할말을 잃게 만든다.

이 사람들과 잘못 엮여서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면 그 사람의 장단에 내가 맞춰줘야 하는 생각까지 든다. 가끔씩은 말을 청산유수로 하는 사람에게 잘못 걸려들어 휘둘리기도 한다. 이런 나르시시스트들은 감정 팔이를 아주 잘한다.

이런 나르시시스트의 세계에서는 그 사람만이 주인공이다. 자기가 출연하는 드라마에서 자기만이 온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항상 피해자를 자처한다. 자기 앞에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자기 인생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생각하고 그들의 말에 자기만의 관점에서의 변명을 늘여놓는다. 자기들이 누군가에겐 되려 가해자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들의 연기는 혀를 내두른다. 심지가 약하고 착한 사람들에게 자기의 기준으로 세뇌를 시켜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야 마는 그들의 악한 심성은 세월에 담금질이 가능한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아니면 그들의 나르시시즘은 평생의 업으로써 지고 가야 할 짐인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과 잘못 엮었었던 기억이 있다. 추억이라고 부르기에는 과대평가가 될 이 기억은 나르시시스트인 그 사람과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마음밖에는 들지 않는다.


우리에게 좋은 사람만 올 수는 없을까?

하소연을 해본다.


성냥을 호호 불고
다른 사람들을 애처롭게 쳐다본다.
다른 사람들의 동정과 인정을 구분하지 못한다.
성냥을 파는 건지 감정을 파는 건지.
성냥을 사는 건지 연민을 사는 건지.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게 되면 나와는 반대의 성격의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하지만, 마음과 같이 행동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다짐했던 마음과는 다르게 행동이 틱틱 나가려고 한다. 다시 멘탈을 부여잡고 그 사람에게 네가 다 옳다고 우쭈쭈 해본다. 그랬더니 자기는 이런 부분이 마음에 안 든다고 집어내며 또 토를 단다.

솔직한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으니 이번에는 내 의견을 가감 없이 표현해본다. 그랬더니 왜 그렇게 나한테 함부로 얘기하냐는 표정으로 자기 생각엔 괜찮은 것 같다며 발을 뺀다.

또 할 말을 잃는다.


우리가 서로 불편한 이유는
네가 그대로 너여서 일까.
내가 그저 나여서 일까,
우리가 그냥 그런 것일까.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납득시키는 게 가능할까?

내가 대하기 힘든 사람을 설득하려 하지 말자.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킨다. 사람과 사람 간의 예의 정도만 지키는 거로도 충분하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에게서 공통점을 찾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나에게서 차이점을 찾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을 강요할 수 없다.

그 사람이 나에게 자신을 설득시키려 노력해도 소용없듯이.



있잖아. 내가 오늘 말이야.


아니. 괜찮아.

네 말은 이제 그만 들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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