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 우리 모두
남들의 소문이 무성해 지나친 사람이 있다. 내 눈을 통해 직접 들여다보니 그냥,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표정이 너무 무거워 보였다. 행여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내가 그 사람의 짐을 덜어줄 수 있을까 싶어 말을 건네 보고 싶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많은 일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힘드셨죠?’
'잘 버텨냈어요. 제가 한 번만 안아봐도 돼요?’
라고 말 붙여보지는 못한 채, 스쳐 지나갔다.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부터 우리는 작은 사회를 경험하게 된다. 그 사회 안에서 우리는 강자와 약자를 구분 짓는다.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강한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아이가 있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약자로 이미지가 굳혀지는 아이가 있다.
학생에게 최대한 신경을 쓰는 선생님의 입장에서도 그의 노력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는 존재하게 된다. 아이들은 어른의 손이 닿지 못하는 새까만 그림자 속의 만행들에 속절없이 노출된다.
누구도 겪어서는 안 되는 일을 목격하고 나서 강자와 맞서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아이들의 위치는 양들이라 소수의 늑대에게 지고야 말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능력 밖의 일이라 치부하고 말아 버리고, 싸울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관자가 되는 편이 양심에는 걸리지만 결국에는 편하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다.
한동안의 정적.
놀랐다가 흩어지는 눈빛들.
보고도 모른 척.
웅성웅성 다시 떠드는 소리.
점심시간이다. 동급생 사이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오늘 당번이라 밥을 나눠주고 있었다. 밥을 나눠주다가 아차, 밥을 한 덩이 크게 떨어뜨리고 말았다.
급식판을 들고 있던 상대편 친구는 하필 인기가 많은 아이다. 그 아이가 옆에 있는 친구와 대화하다가 살짝 급식판이 옆으로 비껴간 순간, 밥을 떨어뜨리게 된 것이다.
사고였다. 공기에 흐르는 긴장감. 따돌림당하는 친구는 침을 꼴깍 삼킨다. 인기 많은 그 회장 아이는 순간 임기응변으로 떨어진 밥 한 덩이를 들어 올리고는
"3초 법칙!
밑에만 먼지 묻은 거고
위에는 먹어도 괜찮지 않아?"
하더니 윗부분을 앙하고 베어 문다.
한순간 정적. 인기 많은 그 친구, 반에서 회장을 하고 있는 그 아이의 당당한 태도에 다들 ‘어어 맞아! 3초 안 지났잖아!' 하고선 웃는다.
상황이 그대로 웃어넘겨진다.
따돌림당하는 친구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되는 불문율의 상황들이 있다. 그 상황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특별한 상황에서 부드럽지만 강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내리깔지 않고 스스로 바로 서있는 사람. 그냥 그렇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또한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말없이 어떤 행동으로 설득시키고 어떠한 특정 분위기를 전파시킨다. 그 특정 분위기란 도덕적으로 타당하면서도 그 누구도 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랄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을 해보지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상처 입는 사람들이 좀 줄어들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애초에 우리가 다른 사람을 구원한다는 게 성립이 되기나 할까. 되지도 않을 예수님 콤플렉스는 집어치우기로 하자.
한 친구가 무리를 겉돈다. 그 사람의 감정이 투명하게 들여다 보이는 것 같다. 마치 사람한테 고양이 같은 투명 귀가 생겨서 나한테만 보이는 것처럼. 그 사람의 마음에 어떤 소용돌이가 이는 것이 보인다. 괜히 마음에 밟힌다. 하루 종일 그 사람에게 해줄 말을 고른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그 친구가 혼자 걷는 게 보인다. 따라잡기 위해 달린다. 헉헉거리며 그 친구 옆에 섰다.
'혼자 어딜 가냐? 같이 가.'
'...'
'무슨 고민 있어?'
'친구가 다리 다쳐서 병문안 가려고.'
'같이 갈래?'
'어. 그래.'
친구의 친구의 병문안. 괜히 둘 사이에 낀 것 같고, 하나도 편안하지 않은 이 어색한 공기. 공통분모도 하나 없는데 갖고 있는 밑천 다 끌어모아 대화를 이어나가 본다.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네가 혼자 자꾸 떨어져 있는 것 같아서 요즘 무슨 일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어.'
'...' '요즘 괜찮아?'
'솔직히 친구들이랑 어울리기가 요즘 어색해져서 혼자 지냈었어. 오늘 같이 병문안 가줘서 고마워.'
'그럼 우리 괜찮은 거지?' '응. 괜찮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 친구도 웃고 나도 따라서 웃는다.
은근하게 무리에서 내쳐지는 사람.
약자로 지목당하고 무시당하는 사람.
무리 내에서 말만 하면 분위기 싸해지는 사람.
학교는 작은 사회다. 그리고 각각의 사회에서 우리는 특정한 역할에 익숙해진다. 다섯 명 이상이 모이고 무리가 만들어지면 그 안에서 소외당하는 사람은 생기기 마련이라고 우리 스스로를 위로한다. 홀수인 쪽수 탓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때때로 방관자가 된다.
솔직히 다들 봤잖아.
알고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
요즘 느끼는 것은 이 세상에서 히어로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정의감에 불타 봤자 역효과가 나서 오히려 오해가 생길 수가 있다. 내가 생각한 배려가 그 사람에게 불편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좋은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기야 히어로가 되기보다 빌런이 되는 편이 훨씬 쉬운지도 모른다. 그게 서로에게 피차 편하다는 생각조차 든다.
하지만 사람끼리 이러는 게 정말 맞는 건가 싶을 때가 한 번씩 있다.
'결론이 이렇게 나는 게 정말 맞는 건가' 싶은.
어깨가 축 처진 동기가 멀리서 보인다. 소문이 무성해서 따로 말 걸어 보지 못한 사람이다. 괜히 내가 구설수에 휘말릴까 싶어서 거리를 뒀었다. 사회생활 어차피 각자 고충이 있는 거지 내가 신경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 ‘한 번만 눈감고 지나가자’라는 생각이 든다.
왠지 오늘만은 예외다.
그냥 두고는 못 지나치겠다.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 본다.
‘저기… 괜찮으세요?’
‘…’
‘요즘 많은 일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힘드셨죠?’
‘…’
‘잘 버텨냈어요. 제가 한 번만 안아봐도 돼요?’
그 사람 왈칵— 터져버렸다.
아. 원래는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