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당신 생각은 하지 않겠습니다.
20살 넘고 처음 사귄 남자 친구였다. 10대 때는 한없이 순수했었다. 미래의 남자 친구와 같이 할 버킷리스트들을 적어가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드라마 속에서 보던 장면들을 내가 하게 될 것이라고. 미래의 남자 친구와 행복할 것이라 상상했다.
같이 교복을 입고 놀이공원에 가고, 길을 걸어 다니며 솜사탕을 먹고, 커플링도 해보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 응원이 되며, 성공해서 독립도 하고, 같이 이사를 돕고 얼굴에 페인트를 묻히며 행복한 장면을 만들어갈 줄 알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의 연애는
어른의 연애 비슷한 것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터무니없는 망상이었다.
우리의 연애는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허무하게 끝났다.
그냥 둘 다 애였다. 서로를 잘 몰랐다. 서로를 알아가는 방법 자체를 모른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애초에 내가 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다.
함께 한 기간이 긴 것도 아니었다. 100일도 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무언가가 실패로 끝나버리고 종결돼버린다는 게 어린 마음에 묘하게 억울했던 것 같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의 잘못도 아니었다.
하지만 관계의 끝은 뒷맛이 쓴 법이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질질 짜고 울면서 털어놓는다고 마음이 나아지지를 않았다. 다 끝난 관계에 이렇게 얘기를 털어놓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하면서, 되려 그 친구에게 화를 내버렸다.
그때 그 친구는 힘들어도 계속 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정신과 상담을 받을 때 의사가 계속 질문을 하며 대답을 이끌어내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 이유가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이 그때의 경험들을 말로 꺼내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리고 계속 말을 뱉어내면 그 일에 대한 마음의 무게가 또한 가벼워지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니까 계속 말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상처 받은 일들, 내가 아프고 힘든 감정에 대해서 누구한테든 붙잡고 말을 해야 그 일이 나에게서 가벼워지다가 결국엔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도 해줬다.
마음의 방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친구보다 세상을 일찍 떠나셨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가끔씩은 상대방이 말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순간도 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언니와 어머니와 함께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하나의 일화로 언제는 친구가 강아지가 키우고 싶어 져서 어머니께 한 마리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친구 어머니께서는 이미 똥강아지를 두 마리 키우고 있는데 한 마리를 어떻게 더 키우냐며 키우고 싶으면 독립해서 따로 키우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런 호탕하시고 위트 있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그 친구는, 성격이 너무 좋았다. 같이 있으면 자주 웃게 되고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를 아꼈었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성격이지만 대화를 나눠보면 항상 마음속 깊은 단단함을 가진 친구였기도 했다.
친구가 얘기하는 마음의 방이란 이런 것이었다.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마음의 방에 정리해놓고
잠시 자물쇠를 걸어놓은 후 한동안 찾지 말라는 거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방의 문을 열고 마주하면 그때의 기억과 감정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라는 게 그 친구의 조언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마음의 방을 말해줬더라면 그렇게까지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때 마음의 방을 말해주던 친구의 눈빛이, 얼굴의 표정이, 나에게 와서 닿았던 그 친구의 감정이 한없이 초연했기 때문일까. 말로 꺼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이미 알고 있는 느낌.
그 표정은 내가 묻지 않았던 친구의 아버지에 관한 질문의 답이었다.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그 친구를 자주 보진 못한다. 각자의 삶을 살면서 열심히 살고 있으리라 짐작해볼 뿐이다. 그래도 가끔 힘든 일이 있기 마련이고, 그 일이 나를 끝없이 괴롭힐 때면 그 친구의 조언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살다 보면 너무 많은 오해와 불필요한 관계, 그리고 한 사람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에 충분한 무신경한 말들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한때는 그 사람들을 따라도 해봤다. 말 같지도 않은 쓰레기 같은 말들엔 나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하고 뱉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엔 다치는 건 나다.
그런 말을 내뱉고 나서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사람 간의 관계에 상처가 깊은 어느 날에는 그 친구가 말해준 ‘마음의 방’ 기법을 사용한다.
제 마음의 방에 묵고 계신 분들이여
편히들 지내고 계십니까?
시간이 지나서 저도 모르게
방에 짐을 빼셨을 수도 있고요.
뭐 그러면 더 좋겠지 말입니다만.
한동안 당신 생각은 하지 않겠습니다.
아닙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좀 더 이쁘게 마음을 고쳐먹겠습니다.
다음번에 당신이 묵고 있는 방의 문을 열었을 땐
제가 좀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하여
먼저 손 내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다만 지금은
지금 당장에는
잠시 넣어두고 한동안 찾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