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각

수도꼭지

by 선우


고통은 프로그램이다.


아픈 것은 잠깐이다.

고통은 성공하려면 당연히 뒤따라 오는 수순 중에 하나다. 임계점을 넘기기 위해서는 매일의 꾸준한 노력이 차서 넘칠 때까지 버텨야 한다.

쉬운 길과 어려운 길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려운 길로 가는 것이 옳은 길이다.

할 일이 많은데 다 하고 싶다면 잠을 줄이면 된다.

계획은 A, B, C,… 혹시나 실패할 경우를 대비할 계획까지 세워두어야 한다.

대충 사는 것은 모두 다 하는 일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시간이 지나면 추월할 수 있을까?

나아질 수 있을까?


감각이 없다.


고통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면서 살다 보니 나에게 통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웬만한 일에는 이제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다치고 또 다쳐서 단단해진 마음의 굳은살은 나를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만들어주지만 다가오는 위험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고통은 중요하다. 아픔도 중요하다. 두려움도 중요하다. 인생에서 다가오는 위협을 구분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에게 필요한 아픔과 필요하지 않은 아픔을 구분할 지혜는 언제 나에게 찾아올까?



매일 똑같은 월요일과 금요일을 만나게 되면 사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주위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대학에 가고 회사에 가고 나를 증명하는 것들로 소속감을 만든다.

대학교에서는 과잠으로 회사에서는 사원증 카드로.

'나에게서 이것들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단단한 땅 위에 세워진 것들이 아니기에, 나를 압도하는 훨씬 큰 학교, 회사라는 큰 배는 오히려 나를 이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작은 존재로 느껴지게 한다.


최근에 공포영화를 즐겨보게 되었다. 신파극 영화처럼 나를 울게 만드는 영화는 이제 힘들다. 그런 감정의 파도가 아니더라도 공포영화는 어떠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에 좋아한다.

울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솔직히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울 기운도 없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습관이 된 무료함과 나태함.

그러다 문득 극약처방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바로 화장실에 있는 세면대의 물마개를 막고 물을 튼 후에 집 앞 편의점에서 랜덤으로 물건 3개를 사 갖고 오는 것이다.

겉옷을 미리 다 입어놓고 물마개를 막고 물을 틀었다.


시작이다.

엘리베이터가 15층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급한 마음에 비상계단으로 내려간다.

집 앞 편의점까지는 50m도 되지 않는다.

달린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간다.

종이 띠링 울린다.

"안녕하세요~"

- "네... 헉헉… 안녕… 하세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인사한다.

일단 아이스티 한 개와 과자 하나를 집고 우유팩 하나를 집는다.

- "계산해주세요." "네~ 총 6400원입니다. 카드 빼셔도 돼요!"

라는 말과 동시에 '감사합니다!' 하면서 빠르게 집으로 뛰어간다. 숨 가쁘게 달려가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시간이 세면대에 물이 넘쳤을 것 같은 때일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진다.

띠링. 5층이다.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연다.

물건을 담은 봉투를 바닥에 내던지고 화장실로 직행한다.

세면대가 다 차고 넘쳐서 물이 바닥에 흐르고 있다.

흐르는 물을 이리저리 피해 가며 수도꼭지를 잠근다.

웃음이 입꼬리에 비져 나온다.

이게뭐라고. 푸흐흐.


고통은 프로그램이다.
웃음도 프로그램이다.
감정은 모두 다 프로그램이야.


그러니까 고통은 최소한 느끼고

최대한 웃을 수 있게 내 삶을 프로그래밍해보자.

우리는 우리의 삶을 빼앗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에게 빼앗기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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