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

하나 둘 셋

by 선우

비 오는 날에는 귀에서 잠시 이어폰을 뺀다. 집 밖에 나서자마자 이어폰을 귀에 꽂는 일은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는 매일의 루틴과 같은 것이지만, 비가 오는 날만큼은 귀에서 이어폰을 뺀다.

우산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듣기 위함이다. 장작 소리 같은 타닥타닥하는 소리가 울린다. 내게 '비'는 애매하게 오는 보슬비이거나 바람이 휘몰아치는 태풍을 동반한 비보다는 굵은 빗방울이 일정하게 떨어지는 장마기간의 비가 진짜 비라고 생각한다.

웬만한 바람에도 끄떡없는 장우산을 들고,

짐은 가볍게 옷은 따숩게

발은 한껏 젖어도 상관없는 슬리퍼를 신고 걷는다.

길을 걷다 가끔씩은 구정물이 튀어서 종아리를 장식해주지만 상관없다.


그저 비일 뿐이다.

소리를 듣는다. 타닥타닥—



초등학교 3학년 때 수영을 처음으로 배웠다. 무릎까지만 차오르는 작은 풀장에서부터 시작해서 킥판을 들고 발차기를 연습한 후 자유영을 배운다. 하나하나씩 단계를 오른다.

수영을 하면서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깊게 잠수를 해서 들어간 후에 배를 수영장 바닥에 터치한 후 올라오는 것이었다. 가끔씩은 앞서 가고 있던 친구를 1-2명 앞질러서 떠오르곤 했었다.

귀가 먹먹해진다. 한쪽 발을 들고 깽깽이를 하며 귓속에 들어간 물을 털어낸다.

자유영, 배영, 평영, 접영 중에 내가 은근히 좋아하는 수영법은 배영이다. 은근히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자유영이 가장 속도 빠르게 잘할 수 있어서 1순위로 좋아하고, 다음으로 좋아하는 영법이 배영이기 때문이다.


배영을 할 때는 귀에 물이 닿는다. 가끔씩 너무 빨리 수영을 하면 앞서 수영하고 있던 아이의 발차기가 머리에 닿는다. 그럴 때는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물에 빠진다. 코에 물이 들어가서 코가 맵다.

머리가 띵하다.

그러나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배영에 집중한다. 수영장 천장이 유리로 되어있어서 낮시간의 햇살이 그대로 들어온다. 천장의 무늬를 탐구한다. 같은 문양이 2개, 3개...

이쯤에서 레인 끝일 텐데.

라는 감이 올 즈음에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다음 턴을 준비한다. 발을 탁 구르면서 몸을 뒤집는다. 팔을 천천히 저으며 다시 천장에 시선을 고정한다.

귀에는 물이 찰랑거리고 저절로 소음이 차단되는 느낌. 고요히 물속에 떠있는 시간 속에서 치유를 받는 것 같다.



하나 둘 셋.

숨을 후 하고 들어마시며 잠수.

일이삼... 오육... 십...

너무 힘들었어.
누가 사정없이 내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물 밖으로 나온 순간
최대한 숨을 들이마시며 숨 쉬려고 노력했어.
그렇지만 세상은 숨을 원하는 때에 쉴 수 있도록
배려해주진 않더라.
파도가 치는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느낌이야.
누가 내 머리를 자꾸 내리누르는데,
나는 살겠다고 살겠다고
자꾸 꾸역꾸역 고개를 쳐드는.

그게 삶이라면,
지속할 가치가 있는 걸까.


힘들 때에는 사는 것이 '잠수' 같다는 생각이었다.
산다는 것이 숨 참기 연습을 매일 하는 것 같았다.
같은 일과 같은 공간, 똑같은 하루의 굴레 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순간순간 갑갑해진다.
언제까지 이것을 지속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같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산다는 것이 정말 무엇일까?



사색에 빠지기도 좋은 영법이 배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빗소리를 들으며 우산 속에서 걷는 것도 생각정리에 도움을 준다. 빗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빠져들듯이 듣게 된다.

한참을 걷다가 아직 뽀송한 벤치 한편에 앉았다.

세로줄 가득한 비 오는 회색 세상을 바라본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무슨 비가 이렇게 쏟아져.”

라며 지나가는 아저씨가 뛰어간다.

하늘이 나 대신 울어주는 거면 좋겠어요.
이게 가만히 듣고 있으면
적잖이 위로가 됩니다.
라고 혼자 속으로 말해본다.


비 오는 날 감성엔 파전에 막걸리라는 생각에

집 가는 길 슈퍼에 들러 막걸리 하나 사서


집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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