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우리에게 주는 상태의 변화를 바탕으로
뜨거운 햇살의 총애를 받는 옥탑방. 하필이면 한여름에 이사를 왔을까 계속 후회했다. 그래도 처음 생기는 나만의 독립적인 공간이었다. 스무 살이 되면 꼭 자취하리라! 라고 다짐했지만, 1학기 생활을 기숙사에서 하게 되었다. 나의 룸메이트는 밤늦게 과제 때마다 맥주를 먹고 치우질 않았다. 또 머리맡의 과자봉지와 함께 자는 덕에 1층에 자는 내 침대에 부스러기들이 떨어지곤 했다. 룸메이트 변경 신청이 번번이 취소되고, 이루지 못했던 나의 자취 로망과 자유를 위해 알바비를 모으고 모아 기어이 독립하게 되었다. 이 옥탑방의 흐리멍텅한 바닥은 회색도, 하늘색도 아닌 미세먼지 가득 낀 하늘색이었으며, 곳곳의 깨진 화장실 타일들이 반짝이는 나보다 오래된 집이었다. 나는 그곳에 무리하게 이사를 온 것이다.
8월의 마지막 주, 가만히만 있어도 익어서 녹아내릴 듯한 더위 속에 나는 혼자 있었다.
밥을 먹으려고 했지만 있는 것이라곤 죄다 인스턴트식품뿐이었다. 냉장고가 없다고 해서 시원하고 신선한 음식이 이렇게나 빨리 그리워질 줄은 몰랐다. 살림이 낡아도 그런대로 쓰려고 했지만, 이 집이 냉장고는 아니었다. 전에 살던 사람이 왜 버리고 갔는지 알만한, 그래서 버리지 않은 것을 원망하게 될 정도였다. 겉모습도 심각하게 썩어가고 있었지만, 내부의 모습은 더욱더 처참했다. 냉장고 안에서 살고 있던 음식들이 그동안 빠져나가고 싶은 전투를 벌인 흔적이 곳곳에 선명했다. 그때는 잠시 냉장고가 없어도 살 만하리라 생각했다.
이삿날에 한 번 전화했을 때는 부모님께서 직접 보고 냉장고를 올려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그때는 그 약속이 3일이 지난 지금까지 잊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기 때문이다. 이제야 냉장고를 사서 보낸다는 연락을 들었다. 이럴 때면 답답해 미치겠다가도, 독립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냉장고는 전라도인 본가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4~5일 정도가 더 걸린다고 한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냉장고가 올라오는 날에 맞추어 김치나 다른 음식도 보내 달라고 했다.
나흘 동안은 밖에서 생활하다시피 했다. 집에 와서 잘 때는 온 문을 활짝 열고 잤다.
이 낡은 옥탑을 찾아올 이 누구란 말인가.
“최은희 씨 계신가요.”
다음 날 택배가 도착했다. 신나는 마음으로 택배를 받으러 갔다. 살짝 큰 택배 상자였지만 냉장고는 확실히 아니었다. 본가에서 보낸 음식이 더 먼저 도착한 것이다. 테이프도 뜯지 않은 채 엄마에게 전화했다. 날도 더운데 음식은 다 어디에 두며, 냉장고도 아직 안 와서 짜증난다며 투정 섞인 화를 냈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곧 있으면 명절이고 음식이라 빠른 배송을 보낸 것이 하루 만에 도착한 것을. 그리고 냉장고가 지금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도.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테이프를 뜯어 택배 상자를 열었다. 김치가 터져서 여기저기 범벅이 되어 빨갛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나보다도 더 화나 보였다. 김치를 들어내니 쉰내가 퍼져 나왔다. 유례없이 더운 날에 음식이 벌써 쉬어버린 모양이었다.
신선하게 무친 나물들도 푹 죽어서 뒤엉켜 있었다. 그 옆에는 잡채가 있었다. 잡채 역시 햇살의 총애를 피할 수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모두 버릴 것이라며 큰소리를 쳤다. 엄마도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우린 떨어져 있어도 똑같은 모습으로 싸우고 있었다.
대충 던져놓은 택배 박스 옆으로 다음 날 냉장고가 들어왔다. 냉장고를 감싸 놓은 검은 비닐을 벗기자 엄마의 글씨로 빼곡하게 적힌 포스트잇들이 보였다. 냉장고 정리 방법부터 내가 좋아하는 잡채의 레시피까지 적혀있었다. 작은 냉장고를 감싼 포스트잇들이 냉장고가 늦게 도착한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택배 박스 속 잡채를 들어 올렸다.
뒤섞인 마음은 여기저기 섞여 흩어졌다. 결국, 또 의도가, 마음이 어긋나서 틀어져 버렸다. 어제의 잡채는 이미 쉬어버렸고, 지금의 모습은 어제보다 더 못된 모습으로 퉁퉁 불어터져 있었다. 우리의 마음은 이미 틀어졌고, 지금의 마음은 읽을 수도 없이 뭉개져서 일그러졌다.
여름을 정리하는 마지막, 뜨거운 햇살 앞에서 보기 좋게 무너진 우리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단편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