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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던컨 Oct 20. 2021

10. 작가라는 부캐를 찾은 월급루팡

부캐를 찾은 인생은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그래도 나아간다. 부캐가 없는 인생은 본캐에서 더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 걸음이다.


이전 세대 직장인은 회사가 나이고 내가 회사라는 사아일체(社我一體) 자부심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본캐로만 진검 승부하며 살아왔다.

부캐라는 한눈을 팔 이유도 여유도 없던 시대라 본캐 겨루기에만 집중했고 최종 승자만이 임원이나 사장과 같은 최고봉에 올라설 수 있었

승부에 몰입한 나머지 승자도 패자도 대부분 각종 암, 뇌졸중, 심근경색과 같은 후유증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아  몸속의 피도 회사 브랜드 색깔에 따라 파란색으로 물들이고 진검을 갈며 전을 기다렸지만 이미 성숙해버린 시장에서 이렇다

승부처도 없거니와 어느새 세상은 검이 아닌 총으로 판이 나는지라 나처럼 검으로 연마한 많은 직장인들은 투입될 전장 없이 기름진 배급에

살이 붙어 몸이 굼떠지고 칼날의 이빨도 내 몸의 이빨도 빠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시쳇말로 '딱 싸이즈가 나온다.'라고 할 수 있다. 아쉽지 않은 연봉에 점심 먹으러 생각없이 회사를 다니다가 오십 줄에 들어서면 인사팀과 얼마 받고 나갈래 하는 네고 겨루기 한판 하는데   

'욱' 해서 희망퇴직원에서 싸인을 하던가 아니면 할 줄 아는 거 없이 암묵적인 멸시를 당해가며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던가 결정을 해야 한다.

  

얼추 계산해보니 직장인으로 지내온 시간이 20년이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10년이다.

나와 비슷한 연배들은 남은 시간 동안 경제적인 측면에 집중한 부캐를 준비기 바쁜데

공인중개사 시험을 본다던가 주식투자에 올인한다던가  월세가 나오는 건물을 찾기도 하고 스마트 스토어를 만들어 쇼핑몰 운영자가 되려고도 한다.

 

나도 막연하게 부캐를 준비해야지 하는 숙제를 갖고 있다가 승진이 좌절되고 월급루팡을 자처하는 내 상황과 고민을 글로 옮겨보며

복잡한 마음이 정리되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글을 쓰는 것은 마음속 울화가 용암과 같이 부글부글 끓다가 시간이 지나 현무암처럼 굳어버린 울화 덩어리를 매끈하게 다듬는 일과 같다.

 

제 각각의 울화 사연을 가진 돌덩어리 하나를 골라 글의 소재로 삼고  돌덩어리 중 단단하고 난 곳을

글이라는 망치와 정으로 깨고 난 후 거친 부분은

사포와 끌이라는 퇴고의 작업을 거치면서 울화로 울퉁불퉁했던 현무암이 자존감 가득한 대리석으로

변해가는 마음의 화학적 변이를 글쓰기를 통해 느끼고 있다.

 

경제적부캐도 필요하겠지만 당장은 마음 수련이 필요한 내 작가라는 부캐를 찾고서 흩어진 마음 다잡고 살아가는 모습을 누가 알았을까 싶다.


No one knows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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