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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던컨 Aug 25. 2021

1. 세 번째 승진 누락

열반의 원샷

버스전용차선 같이 거침없이 쫙쫙 뻗어나가는 인생이었으면

“그래서 거길 간다고? 참 속도 좋다.”

시무룩한 내 얼굴에 톡 쏘아붙이는 마누라 목소리에 주눅이 들다가 갑자기 화가 난다.

“아니! 난 뭐 가고 싶어서 가는 줄 알아?” 하며 대거리를 해댄다.

 

2021년 봄 우리 부서에는 진급 대상자가 세명이었다.

책임으로 진급 대상인 후배 둘과 수석으로 진급 대상인 나 이렇게 셋이었다.

후배 둘은 첫 번째 도전이었고 나는 세 번째 도전이었다.

 

말이 좋아 세 번째 도전이지 같은 연배 동료들은 다 수석이 되었데 내 이름이 없는 진급자 명단에서 정말 내 이름이 없나 찾아대는 비참한 짓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미련 없다며 속세 욕심은 버리고 자연인처럼 살겠다며 주변에 얘기했지만

그래도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되나 말이지 또다시 진급 철이 다가오니 삼세판이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하는 심정으로 고과에도 신경 쓰고 진급에 가점이 되는 외국어 점수도 마련하였다.

그런 내게 누구라도 “이번에는 정말 되셔야 할 텐데요”라고 하면 그런 마음이 들킬세라

“난 이제 더 이상 관심 없어 우리 부서 후배들만 붙으면 그거면 돼” 했지만  

속마음은 “그래 이번에는 떡하니 붙는 거 잘 봐라” 하는 그런 마음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후배 둘은 진급을 했고 내 이름은 또 명단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세 번째 누락을 맞은 느낌은 이전과는 많이 달랐는데 아마 이제 더 이상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규정상 누락 횟수와는 상관없이 계속 진급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안 그래도 올라갈 사람은

많고 올라설 수 있는 자리는 부족한데 세 번 떨어진 사람을 챙겨줄리는 만무하다.


대학입시도 재수 없이 들어가고 대학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직하고 회사에서도 진급 때면

빠르거나 늦지 않게 때에 맞춰 따박따박 올라온 나였는데 임원은 못되더라도 팀장은 해봐야지

는데 만년 책임으로 정년퇴직을 맞이하겠구나 하 더 이상 발전 가능성이 없는 회사생활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책임으로 진급한 우리 부서 후배 둘은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몇몇 친한 선배들에게

그간 물심양면으로 도움 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조촐한 식사자리를 마련했으니 꼭 참석해달라고

하는 메일을 보내왔다. 물론 나도 포함이었다.


메일을 받고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엄청 망설였다.

솔직한 심정은 ‘이것들이 사람 염장을 질러도 유분수지 내가 미쳤다고 거길 가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 그 선배 이번에도 떨어져서 삐져서 안 오나 보다’ 하는 말이 나올게 뻔하고

그간 ‘나는 자연인이다.’ 코스프레를 했기 때문에 짐짓 대범한 척하며 하며 축하해주는 게 선배 된

도리라고 생각하기에 ‘그래 가자!’ 하고 마음을 먹고 마누라에게 얘기를 시작하던 순간이었다.

 

“나도 가기 싫어, 가기 싫은데 또 직장생활이 어디 그러냐고? 아니어도 아닌 척 지내야………”

라고 하며 못다 한 분을 푼다.

정적이 흐르고 내가 한 말이 틀린 말은 아닌지라 마누라는 그럼 알아서 해” 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을 했고 난 “아 몰라 잘 꺼야”라며  

불어 터진 표정으로 답하며 혼자 이른 잠을 청한다.

괜히 TV 보는 아이들에게 ‘소리 좀 줄이라고’ 신경질을 내고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잔다.


후배들은 회사 근처 식당이 아닌 집으로 선배들을 초대했다.

가뜩이나 불편한 마음인데 우리 집과 정반대 방향이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족히 두 시간은 될 후배 집으로 마땅치 않아하며 택시 타고 들어갔다.

일찍 퇴근한 후배들은 상을 차리고 있고 선배들은 ‘집이 좋다.’ ‘뭘 이리 많이 차렸냐’ 하는

인사말로 초대에 응답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잔에 맥주를 한가득 따라서 ‘축하한다.’ ‘고맙습니다.’를 연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승진 소감을 청해 듣는다.

내가 제일 선임이라서 대표로 한마디 해야 하는데 축하한다면서도 일그러지는 얼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결국 ‘승진한 두 후배님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라는 뻔한 건배사를 외치며 잔을 치켜든다.


맥주는 시원하게 비워냈다만 속으로 내게 묻는다. 

‘니 발전은 어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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