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가 예정보다 일찍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현서는 내심 기뻤다. 달콤한 말로 표현하는 보통의 사랑보다 행동으로 보이는 사랑 확인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다.
"연말까지 있다가 떡국 한 그릇 먹고 가지 왜."
연우의 어머니는 이틀만 자고 간다는 연우에게 섭섭함을 표현했다. 연우는 곧 있을 정교사 채용을 핑계로 일찍 올라가려 했다. 중요한 시기이니 어머니도 더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가볼게요. 건강 조심하시고요."
버스가 출발하고도 먼발치서 손을 흔드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현서에게 문자를 했다
'나 이제 출발해. 집에 가서 반찬 싸주신 거 정리하고 저녁에 시간 괜찮은데. 저녁 먹을까?
연우는 현서를 볼 생각에 들떠있었다.
연우는 첫사랑과 사귈 때도 자신이 이런 모습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연우는 냉장고 가득 반찬들을 정리하고, 생필품 받아온 것들도 차곡차곡 정리했다. 먼지를 털고, 방도 한번 닦았다. 미루는 법이 없는 연우는 오자마자 한번 앉지도 않고, 해야 할 일을 먼저 했다.
'이제 나가봐야겠다.'
3일 만에 만난 둘은 처음으로 술을 마시러 가기로 했다.
"우리가 낮에만 만났나? 어두운대서 보니까 또 다르네."
현서는 3일 만에 만난 연우가 좋았던 건지, 술집 조명 덕분인지 연우의 얼굴이 더 빛나 보였다.
"너 보고 싶어서 일찍 온 거야."
"진짜? 너 엄청 변한 거 알지? 이제 그런 말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내가 뭘."
아주 잠깐이지만 사랑은 사람도 변하게 했다.
"난 다음 달부터는 정교사 채용 준비 때문에 바쁠지도 몰라. 넌 취업 계획해둔 거 있어?"
"중요한 시기네. 나는 고민 중이야. 과외 몇 개 늘리면 대형학원강사 월급은 될 것 같은데, 계속 과외만 하고도 밥벌이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이들 가르치는 것도 재밌고, 스트레스도 많이 안 받고, 편하긴 한대.."
"과외하다가 다른 직장 들어가면 힘들긴 할 거야. 과외는 상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도 자유로운 편이라. 그래도 이것저것 알아보는 게 어때? 나보단 길이 많을걸?"
20대 중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었다. 안정적인 것도 불안정적인 것도 아닌 중간쯤. 안심하기에도 불안해 하기에도 애매한 상태였다.
사랑만 얘기해도 모자란 시간에 앞으로 벌어먹고 살 궁리를 해야 했다.
"우린 10년 뒤에 어떻게 살고 있을까?"
현서는 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때도 같이 있을까.'
"지금보단 덜 열심히 살고 있었으면 좋겠어. 나는 가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잘하고 있는 건지 헷갈려"
현서는 연우와의 미래를 그려보고, 연우는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넌 수학교사 하나만 보고 달려온 거잖아. 그것도 멋진 것 같아. 어릴 적 꿈을 지키고 이뤄내는 거. 난 그동안 뭘 한 걸까."
"너도 열심히 살았지. 꿈이 정해져 있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야. 난 게을러서 하나만 생각한 건데? 나중에 보니까 다른 직업들도 눈에 들어오더라."
자존심 때문에 친구들에게 꺼내기 힘들었던 얘기들도 너무 쉽게 입 밖으로 나왔다.
"좋다. 너랑 이런 얘기도 할 수 있어서."
현서는 연우와 만나면서 그동안 자신의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 깨달았다.
"나도. 난 친구들도 거의 안 만나서 이런 얘기 할 사람도 없어. "
연우에겐 현서가 친구이자 애인이었다. 다른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연우였지만 현서에게는 그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