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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Mar 25. 2024

내 딸을 괴롭힌 아이와 스위스

그래, 내 딸아이는 상처 받았다. 웬만한 폭력, 말로 주는 상처 따위는 잘 견뎌오던 아이였지만, 갈수록 커지는 관계의 벽에 아이는 '멈춤'을 선언했다. 


학교 안 가면 안 돼?


나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했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 중 하나는 나 스스로 아이 시절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내가 그 나이 때쯤 어떻게 살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내가 바라봤던 세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또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를 찬찬히 생각해 보면, 지금 내 아이가 겪는 상황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어른 상태인 자기 자신의 조건으로 아이를 대하기 때문에 아이와 공감하지 못한다. 어른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저 다그치고, 종용하고, 명령한다. 이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가지 마.


내가 내린 최선의 선택은 이것이었다. 나는 어른이 되어 7년 간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기자가 된 이후로 내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할지 연구했다. 책을 읽고, 신문의 지표가 암시하는 현 교육 상황을 파악하며 내 아이가 겪게 될 어려움에 대해 미리 공부했다. 나는 이렇게 아이를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유로운 어린 시절

-장차 내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즐거웠던 어린 시절

-배울 것을 엄격히 배우고, 바르고 진실된 사람으로 성장하기

-지능과 태도, 성실성

-성인이 되었을 때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아이

-자기존엄과 자존감, 가족에 대한 신뢰


아빠, 우리 스위스에 가서 살면 안 돼?


어느 날 딸애가 묻는다.


왜 안 돼. 근데 지금 당장은 좀 어려워.


나, 150만원 모았어. 그걸로 가면 안 돼?


그걸론 한 달도 못 버텨. 가려면 아빠 직장이 필요해.


작년에 우리 가족은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했다. 아이는 그 시절을 계속 떠올리면서, 스위스에 가서 살고 싶다고 졸랐다.


스위스가 왜 좋아?


그냥 자유롭잖아. 공기도 맑고 산책할 수도 있고 자연도 깨끗해.


그렇지.


그것은 전조 현상이었다. 아이는 이미 학교 생활, 학원 생활, 친구들과의 관계 등에 지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 안 가고 싶어!



학교? 중요하다. 그러나 학교가 전부는 아니다. 부모라면, 학교가 내 아이에게 주는 여러 가르침과 더불어 동시에 학교 안에서 내 아이가 겪을 수 있는 폭력, 무책임, 불신 같은 것들도 염두에 둘 줄 알아야 한다. 만약 내 아이에게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가장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학교는 그리 낭만적이고 따뜻한 장소가 아니다. 믿고 내 아이를 맡길 만한 좋은 공간도 아니다. 우린 그저 우리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학교란 델 보내고, 다만 그 안에서 아이가 좋은 것을 배우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깨우치며 성장하길 바랄 뿐이다.


나는 학교를 두려워하는 내 아이에게, 학교란 불변의 의무가 아님을 말해주었다.


안 가도 돼. 쉬고 싶은 만큼 쉬어.


내 개인적으로는, 최후의 수단으로써 자퇴, 그리고 홈스쿨링까지 각오했다. 부모는 아이를 자기 삶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시킬 의무가 있다. 자기 삶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어른이 되려면 높은 지능, 성실성, 목표, 자존감, 자신감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학교가 또는 학원이 이러한 것들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어떤 아이는 학교나 학원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것은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감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인간은 없듯이, 이는 자연스럽다. 지금 우리 학교가 우리 학원이 감옥을 닮아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봐야 한다. 부모라면 폭넓게 바라보고 많이 알아야 한다. 아이의 입장에 서서 바라보고, 어른으로서 책임감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9일이 흘렀다. 아이는 정확히 6일을 결석한 뒤 학교에 나갔다. 그날, 아이는 두 시간만 수업을 받고 조퇴했다.


잘했어.


나는 말했다.


학교로부터는 결정 사유서가 날아왔다. 그건, 그저 잘 작성해 보내면 그만이다.


나는 저녁 시간, 아내를 따로 불러 말했다.


지금 제라는 너무 멀리 봐서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 이렇게 중학교에 어떻게 가지? 대학은 꼭 가야 하는 거야? 이렇게 묻는 걸 보면, 하루하루 힘든데 이걸 몇 년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한 감정이 드나 봐. 나도 그렇지만 자기도 제라에게 틈나는 대로 일러 줘. 너무 멀리 보지 말라고. 오늘 하루만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어른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 어떻게 살지만 생각하라고.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고. 일주일, 한 달, 일 년 ... 이렇게 멀리 내다보면, 힘들어서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없는 거라고. 그게 인생의 법칙이라고, 말해 줘.


응.


아내는 수긍했다.


아이들 입장에서, 힘든 하루를 버티는 것은 큰 일이다. 그렇게 몇 년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리라.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제라를 데리고 산책하면서, 나는 말했다.


제라야, 아빠가 길게 내다봐야 한다고 했어, 아니면 오늘 하루만 보라고 했어?


오늘 하루만.


제라가 답한다.


그래, 그거야. 아빠도 그래. 아빠도 한 달, 1년 이렇게 생각하면 회사 못 다녀. 그건 끔찍한 일이거든. 그러니 제라도 오늘은 오늘 하루만 생각하기! 내일이 되면 또 내일 하루만! 알았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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