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있고 나서, 열흘 전후가 흘렀다. 둘째 애는 다시 학교에 나갔다.
아이들에게 일러 주십시오. 제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라에게 묻지 말아라. 어디가 아팠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학교에 그간 나오지 않았는지, 지금은 괜찮은지 등 아무것도 제라에게 묻지 말아라.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제라를 대해줘라. 이렇게 말씀해 주세요. 선생님도, 가급적 제라를 평소 때처럼 대해 주세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제라가 그걸 원합니다. 지금 제라 상황이 썩 좋지 않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나는 선생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충분히 설명드리고 부탁했다. 선생님은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제라에게 물었다.
오늘 학교는 어땠어?
응. 괜찮았어.
심드렁하다. 정말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태도다.
아이들은 제라에 대해 묻지 않디?
안 물어보던데?
그렇구나. 선생님은?
선생님도.
음, 그렇구나. 그래서 제라는 기분이 괜찮았어?
응, 편했어. 아무도 묻지 않아서, 좋았어.
그렇구나, 참 다행이구나.
나는 거기까지 말하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런 대화 자체가 제라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고, 상처를 헤집는 게 될 수 있고 또 상처를 떠올리게 만들 수 있으리라. 나는 평소 때처럼 설거지를 하고, 밥을 지었다.
오늘은 정말 맛있는 걸 만들어줄게.
첫째가 돌아오고 나서 아내 없이 우리 셋은 밥을 먹었다.
제라는 그 일이 있고 나서, 하체 무력증을 호소했다. 코로나에 걸린 뒤로 일어난 증상이긴 한데, 그 일이 있고 나서 더 빈번히 나타나는 걸 보면, 극심한 심적 스트레스와 무관해 보이지 않았다. 자고 일어난 후, 다리에 힘이 없어. 제라는 말했고, 아내와 나는 상의 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이전에는 그저 아침에 잠시 그랬다면, 이제는 하루 종일 수시로 하체 무력증이 나타났다. 다리에 힘이 없는 것, 그것 때문에 또 학교에 며칠 결석했다.
아내는 다시 정밀검사를 예약했다.
다리에 힘 없는 게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써는 되도록 별일 아닌 것처럼 반응하는 게 좋겠어. 우리가 큰일 난 것처럼 호들갑 떨면 제라가 더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제라는 친구들 몇 명으로부터 말에 의한 상처를 받았고, 그것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어 학교 출석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제라는 자기 얼굴을 식칼로 그었다.
나, 무서워.
뭐가 무섭지?
모든 게. 친구도, 학교도, 선생님도... !!
그래, 제라야, 그럴 수 있어. 아빠도 무서워. 아빠가 회사 가면 괴롭히는 사람도 있고, 겁 주는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많아서 무서워. 아빠랑 똑같은 거네.
나와 아내는 결정을 내렸다. 제라로 하여금 며칠 간 학교를 쉬도록 했다. 상처 받은 공간에 아이를 방치해 두는 것은 매우 나쁜 선택이다. 우선은 공간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상처를 준 이, 두려운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도록 하고, 아이가 객관적으로 자기 상황을 인지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나는 긴 시간 제라와 함께 하면서 충분히 상황을 파악하고, 정서적으로 제라를 감싸 안았다. 문제를 인지하고, 처방을 내리기까지 신중하게 상황을 진단했다.
나의 결론은 '거리'였다. 우선은 상황과 사람, 공간으로부터의 거리가 필요했다. 제라 스스로 이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다시 회복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감정적으로 제라를 위로하고 공감해 주었다. 제라가 절대로 이 세상에 홀로 내버려진 게 아니라는 점, 가족이 있다는 것, 아빠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 주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빠가 함께 동행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믿도록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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