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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Apr 16. 2024

내 딸에게 가장 필요한 것, 친구

제라는 학교 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무난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어떤 문제를 겪으면, 무난하고 평범한 일상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알게 된다. 그러한 경험이 있는 부모는, 그저 아무 일 없이 건강하게 생활해 다오,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나는 문제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가진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함을 깨닫게 되는 기회라고 받아들인다. 물론 크고 작은 문제는 고통스럽다. 이걸 어떻게 대처하지? 이 문제가 더 확대돼서, 더 꼬여서 더 큰 문제로 가는 것은 아닐까? 우린 문제를 대하면서, 그러한 불안에 직면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아이가 어떤 문제를 가졌을 때, 부모는 침착해야 한다. 수정처럼, 얼음처럼, 냉정하고 차갑게 현실을 판단해야 한다. 부모가 흔들리면, 아이는 방향을 잃어버리게 되리라.


완벽한 부모란 없다. 다만 완벽에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부모가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는 부모로서 흠이 있고, 부족함이 있으며, 채울 수 없는 능력의 한계치를 가지고 있다. 그저, 그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더 좋은 부모, 더 나은 부모,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부모가 되려 노력할 뿐이다. 노력, 그것은 매우 긍정적인 신호다.


그래, 노력하는 부모가 되자. 이러한 신념으로 나는 살아왔고, 나의 아내와도 소통한다.


제라는 종종 학교 수업을 힘들어하고, 친구 대하는 것을 힘들어 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 특별하네! 특이하네! 얘는 왜 이렇게 까탈스럽지? 이렇게 반응하면 곤란하다. 아이들이 이 험하고 폭력적인 세상에 나아가서 사람과 부딪히고, 책임을 지고, 고통에 직면하게 되면 이런저런 어려움을 호소하기 마련이다. 어떤 아이는 말없이 견디지만, 어떤 아이는 몸으로 그 어려움을 표현하기도 하고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를 받아주고,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고, 보듬어 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 부모의 역할이다. 특별히 우리 사회는 어린 아이들에게 과중한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다. 부모라면, 이 점을 알아야 한다. 내 아이가 스웨덴이나 독일에서 태어났다면 겪지 않아도 될 과중한 학업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들에게는 더 많은 자유와 놀이, 체험, 자연과의 접촉이 필요하다. 우리사회 아이들은 이 모든 것에서 격리된 채 그저 학습만 강요받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 아래서는 행복한 아이로 자라나기 어렵다.


어제는 제라가 친구들 두 명을 집에 데려왔다.


너희들,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라면!


아이들은 외쳤다.


나는 정성스레 라면을 끓여 주었다. 셋이 식탁에 앉아 뜨겁게 끓여진 라면을 먹으면서도 어찌나 웃어대고 저희들끼리 행복해 하는지, 나는 보고만 있으면서도 절로 행복해졌다. 그래, 저거지. 저 시기엔 저런 시간이 필요하다. 저렇게 모여만 있어도, 라면 하날 두고도 행복해 하는 아이들인데, 우리 어른들이 저들의 어린 시간을 빼앗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라는 밤이 돼서, 엄마와 둘이 바닥에 누워 잠들기 전까지 도란도란 엄마와 대화를 나눴다. 나는 그 모습에 흡족했다.


제라가, 좀 더 자유롭게 컸으면 하고 나는 바란다. 지금 제라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 명의 친구이고, 따뜻한 품을 제공할 수 있는 가정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안다. 그러한 것들을 주기 위해, 아빠로서 나는 방법을 찾고 최선을 다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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