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은 Jul 02. 2024

'해야 할 일'과 '내 일 아님'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내 삶, 내 시간, 나의 하루에 이렇게 간명한 경계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생각이 심플해지고 삶 자체가 심플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심플 라이프 (Simple Life)


내 삶이 심플해진 것은 (자랑은 아니지만) 나의 오랜 노력과 연습, 실패 덕분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내가 해야 할 일과 내 일이 아닌 것을 구분해 왔고, 이를 실천했다. 이러한 구분과 반복은 내게 큰 이점을 가져다 주었다. 무엇보다 불필요한 데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고 동시에 반드시 필요한 일에 집중하고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부을 수 있다. 이러한 효율성은 죽음이란 한계가 명확한 삶에 매우 필요하다.


해야 할일 (Must)과 내 일 아님(Not my business)


가는 길이 명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야 할 방향 혹은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나 길을 묻는 이들에게 길을 말해주는 일은 즐기는 편이다. 그것은 행복하고 의미있으며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 청년, 어린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 '그거군요!'하고 마치 정답을 찾은 것마냥 행복해 하는 이들을 보면 큰 만족감을 느낀다.


내가 행동과 책임, 의무를 구분하는 방식은 이러하다.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이 아니다.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나는 이렇게 분류한다. '해야 할 일' 그리고 '내 일 아님'. 즉 '머스트'와 '낫 마이 비즈니스'다. 이렇게 구분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세상 모든 일은 그 나름대로 색이 있다. 가령 세계 모든 장소는 저마다의 색이 있다. 모든 동식물, 역사, 우주의 별, 자연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나는 어디까지가 가치 있고 어디부터는 가치 없다고 말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나라는 특별한 존재의 입장에서, 나에게 의미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을 뿐이다. 즉, 나에게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지만 타인에게는 다를 수 있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내가 가고 싶지 않은 곳, 하고 싶지 않은 일, 관심없는 것들은 나에게 '낫 마이 비즈니스'다.


나의 '해야 할 일' (머스트)


좋은 글을 쓰는 것,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해야 하는 모든 일은 내게 있어 '머스트'다. 좋은 기자, 좋은 아빠, 좋은 가족, 좋은 남편, 좋은 아들,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이를 위해 해야 할 일 역시 내게는 '머스트'다. 나는 내가 할 일을 하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서 건강한 신체가 필요하다. 그래서 역기를 들고 러닝을 한다. 또한 내가 해야 할 일에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붓기 위해 좋은 휴식을 하고 좋은 잠을 잔다. 휴식과 잠 역시 내겐 '머스트'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 역시 내겐 '머스트'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여행을 하며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일 역시 '머스트'다. 나는 의미없이 무언가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내 일 아님 (낫 마이 비즈니스)


나는 요즘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경향에 대해 관심이 없다.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기본적으로 그건 그들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주식이나 부동산에 관심이 없다. 나에게 그것들은 '낫 마이 비즈니스'다. 학벌, 명문데? 그것도 나는 관심이 없다. 나는 내 아이를 교육시키는 데 있어 사실 전력을 쏟는 편이지만 '학벌', '명문대'는 내 교육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과 세계에 대해 알고자 하는 열망을 지닌 젊은이로 내 아이를 키우고자 할 뿐이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것들, 해야 할 것과 하면 안 될 것에 대해 나는 관심이 없다. 상사의 말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둥, 좋은 분위기를 해치면 안 된다는 둥, 그런 말, 나는 듣지 않는다. 나의 경험상, 사람들은 올바르지 않은 결정, 비도덕적인 행동, 비윤리적인 일에 무감각하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침묵하고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가담하며 공동체에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일인지 인지한 상태로 어떤 행위를 한다. 관료 조직, 언론, 공기업, 학교 등이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람들이 말하는 조직의 이익, 진급하기 위해 가져야 할 행동 원칙, 따라야 할 분위기에 나를 맞추자면 나는 내 양심을 저버려야만 한다. 나는 그것을 거부한다.


나는 늘 '낫 마이 비즈니스'에 충실해 왔다. 진급도 늘 꼴찌에, 온갖 거짓 소문과 모함의 대상이 되었고, 왕따 등에 시달렸지만 그러한 시련 없이 양심을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라는 확실한 존재성


나는 누구에게나 이렇게 비춰지는 듯하다. 개성이 강한 사람, 주관이 뚜렷한 사람, 좌고우면하지 않는 사람. 나를 비난하는 이도 많고 좋게 생각해 주는 이도 많은데 그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마도 이것이리라. 개성 강한 사람, 자기 생각이 분명한 사람.


나는 색이 확실한 사람이다. 앞으로 그러하리라. 이것은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시련을 겪었다. 그렇기에 얻은 것이 크다. 심플한 삶. 예측 가능한 삶이 그것이다. 


다른 것은 다 빼더라도, 이것 만큼은 내 아이들도 가지길 원한다. 자기 자신의 존엄과 양심을 지키고 시간을 아껴 최상위 버전의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길 바라는 것이다. 타인 이야기에 휘둘리지 말고 오직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올곧게 전진하기를 바랄 뿐이다.


심플한 삶, 심플한 인간. 그것은 도전과 숱한 경험, 실패와 좌절 없이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앞에 놓인 높은 벽을 자기 힘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 최악의 삶이란 더 이상 무너뜨릴 벽이 없는 상태다. 아무 의미도 모른 채, 그저 주어진 시간을 허비하는 삶, 그것이 가장 비참한 삶이다.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이전 16화 아이가 학교(학습)를 대하는 생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