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나이 먹으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뭘까? 나의 경우에,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많다. 아마도, 사람들이 말하는 방향으로 그저 생각없이 따라가기가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 내가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갔기에, 나는 그 결과물로써 제법 많은 덩어리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으리라. 군중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 내 생각도 그렇게 굳어진다. 그러나 오직 내 영혼이 인도하는 길을 개척하며 나아가는 자에게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생각이 만들어진다. 군중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쫓아야 의미있는 삶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의 결혼
나의 결혼생활이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와 와이프는 자주 싸웠고, 싸우고 나면 말을 주고받지 않는 제법 긴 시간을 보냈다. 나는 누구보다 아내에게 많은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고 나의 아내는 그 말을 곱게 들어주었다. 우린 여행을 많이 했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관계가 변한다는 것도 알았다. 나와 아내는 상대방으로 꽉 들어차 있던 공간이 물리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경험했다. 이제는 상대방이 아니라 아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상대방만을 바라보던 생활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생활로 옮겨가면서, 아내와 나는 전략적으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내는 엄마로서의 역할이, 나는 아빠로서의 역할이 주어졌는데, 우리는 말없이 그 역할을 해내야 했다. 좋은 엄마, 좋은 아빠로서, 모범을 보이고, 사랑을 주고, 아이들이 옳은 방향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했다.
그럭저럭, 그 일을 잘 해낸 것 같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결혼도 잘 안 하고, 아이 낳는 것도 기피한다. 나는 그들의 생각을 존중한다. 시대마다 어려움과 고통, 풍조의 양상은 달라지는 법이다.
결혼, 해야 하나?
그런 질문을 많이 받곤 한다. 결혼 하는 게 좋아, 안 하는 게 좋아? 아이, 낳는 게 좋아, 안 낳는 게 좋아? 내 생각에, 이것은 웃기는 질문이다. 답은 각자가 찾아야 하는 것이니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결혼과 육아란 희생이란 점뿐이다.
희생이 답이었다는 것을, 나는 늦게 깨달았다. 지금도 완벽히 벗어난 것은 아니나, 나는 희생이란 개념을 깨달음으로써 아내에 대한 내 시각을 바꿨다. 암묵적으로, 나와 아내는 역할을 나누었고, 충실히 자기 몫을 해낸다. 나는 매일 요리와 설거지를 한다. 아내는 주말을 이용해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한다. 아이들 교육은 대체로 내가 맡으나, 아내 역시 틈나는 대로 개입한다. 아내와 나의 교육관은 조금 다르지만, 대체로 아내는 내 교육 철학을 따라준다.
결혼
결혼이 어떠한가? 이 질문이, 나에게는 이렇게 들린다. 희생이 어떠한가? 누군가를 위해, 타인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결혼, 육아란 결국은 희생에 관한 스토리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나라는 인간이 타인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된다. 그것이 나도 희생해야 해, 라는 말의 조건이 될 수는 없으나 적어도 희생의 의미를 반추하도록 돕는 역할은 한다.
희생
희생이란 흔히 생각하듯, 마이너스 게임이 아니다. 희생은 가치와 의미의 측면에서 사랑과 유사하다. 내가 많이 건네줄수록 누군가를 행복과 의미, 가치로 이끌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이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겪는 수많은 경험 중에서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경험이다. 그것은 책임이나 의무라는 덕목과도 통한다.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이기심이나 탐욕보다 책임이고 희생이다. 어떤 일이든, 어떤 역경이든 책임감과 희생은 그것을 이겨 낼 만한, 견뎌 낼 만한 이유를 제공해 준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데엔 에너지, 삶의 활력, 그리고 불안의 문제가 겹쳐 있지 않은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성인이 되기까지 학습, 경젱이란 것으로 너무 지쳐버린 것이 아닌가. 에너지가 바닥나고, 활력이 없으며 불안한 상태에서 인간은 희생하고 사랑할 만한 힘을 잃는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것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 문제, 정치적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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